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지도자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인터넷 시대의 체 게바라로 일컬어진다. 20세기 최고의 혁명가라는 체 게바라와 비교되는 데 대해 오히려 그 자신은 체 게바라와는 다른 ‘평화협상가’임을 주장하며 정치지도자로의 변신을 선언했지만, 그는 이미 체 게바라의 재현으로 숭배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는 사람들의 상징적 존재가 돼 버렸다.
하나의 이미지가 이 정도 단계에 접어들면 이미지는 이미 현실을 넘어 상대적 독립성을 갖고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미지는 단순히 어떤 대상에 대한 감각과 의식의 재현이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생명체가 된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이미지가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형성 파급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지를 생산 유포하는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로고스 중심주의 시대의 종언을 전해준다. 로고스 중심주의가 서구 사회에 존재해 온 인식방법의 하나일 뿐임을 지적하며, 이미지야말로 사유나 개념의 모태라고 주장하는 프랑스 사상가 질베르 뒤랑의 이미지 중심주의는 이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더욱 힘을 발휘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듯이 이제 이미지는 전염병처럼 증식하며 현실을 덮어 버릴 정도에 이르렀지만, 이미지가 진실을 가리거나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인 양 믿게 만드는 부정적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Made in Earth, LG IBM’,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등 ‘브랜드’라는 이 시대의 대표적 이미지는 개별적 거래 행위나 특정한 상품 또는 개인을 뛰어넘는,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상호 인정 관계를 형성한다. 이미지는 장황한 논리적 설명을 넘어서는 신뢰를 형성하며 그 이미지가 담을 가능성의 가치를 미리 확보한다.
어떤 이미지가 이 정도의 ‘브랜드’를 형성했다면 이 단계에서 하나의 선택이 요구된다. 그것은 현실과 독립적으로 가속화하는 이미지의 신화화를 묵과할 것인가, 아니면 이 이미지의 과도한 신화화와 맞서며 확고한 신뢰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속성을 잘 아는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영웅들이 흔히 빠지곤 하는 자기 이미지의 신화화를 경계하며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허구성과 끊임없이 맞선다.
멕시코 인구의 10%에 불과한 원주민의 편에 서서 전세계의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확보한 것은 자기 이미지의 신비화에 맞서며 전세계로부터 자신의 ‘보편성’을 인정받은 결과다. 멕시코에서 진정 정의와 평화를 원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여 준 보름간의 3000여 ㎞ 평화행진은 그 ‘신뢰’와 ‘보편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것이었다.
이미지의 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지라는 우상 뒤에 안주하지 않는 ‘자기 절제’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過猶不及)”고 했던가. 이 말은 틀렸다. 지나치면 몰락의 나락이 그 앞에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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