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문화비평]살빼기의 유혹과 진화론적 믿음

  • 입력 2001년 6월 12일 18시 40분


BC 4세기 경 인도에서 생겨나 지금까지 그 맥을 잇고 있는 자이나교. 수행과 고행을 통해 영혼을 속박하는 육체의 업(業)을 제거해 나가다가, 끝내는 그 몸을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해탈을 이룬다.

이것은 좀 극단적 방법이긴 하지만, 육체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고 육체를 통제하려 한 것은 구성원의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킬 만한 생산력을 지니지 못했던 인간 사회에서 흔히 행해져 온 일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배고픔 성욕 등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생산력을 발전시킨 인간은 이제 몸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겉으로는 아무리 고차원적인 이념을 표방했더라도 지금까지 인간들이 지구상에서 이뤄 온 성과의 대부분은 결국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 자신의 몸은 욕망의 원천일 뿐 아니라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몸의 곳곳에 구멍을 뚫고 유방을 확대하고 턱뼈를 깎고 이마를 튀어나오게 하는 인공적 기술은 이미 생소하지 않다. 이 기술에 익숙한 자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꾸듯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한 연예인의 살빼기에 지방흡입수술이 ‘개입’됐다는 논란의 이면에는 인공적 기술에 의한 몸의 조작에 대해 여전히 존재하는 정서적 거부감, 그리고 수천만 원에 달하는 성형수술 비용이 주는 사회적 위화감이 있다. 이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거부감이나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계급의 형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기술의 안전성 확보와 저렴한 기술의 개발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일이다,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발달이 과학기술 지배사회의 공포와 위화감에 대한 우려를 극복해 가고 있듯이.

하버드 의대 낸시 에트코프 교수처럼 부드러운 피부, 윤기 나는 머리카락, 잘록한 허리, 대칭적인 몸 등에 대한 선호가 건강한 자손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자에 따른다면, 인간이 몸을 매혹적으로 가꾸려는 욕구를 막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전세계의 모든 인종과 민족이 멀티미디어를 통해 이른바 ‘세계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다이어트나 운동뿐 아니라 성형수술이나 유전자조작이라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름다운’ 몸이 사회적 성공을 위한 매우 유리한 조건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몸매가꾸기 시장의 규모는 급속도로 확대되고, 이 시장의 유혹에 이름값 가진 이들이 빠져들어 ‘무리한 희망’을 전파하며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데 합세하는 일도 피하기 어렵다.

이른바 문화다원주의 시대에 문화식민지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불행한 한 단면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믿을 만한 것은, 조각 같은 ‘쭉쭉빵빵’이나 ‘비비인형’에 쉽게 싫증내며 생물학적 다양성을 통해 건강한 종족을 보존하려는 ‘내 유전자’의 진화론적 본성이다.

<김형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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