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무섭지? 안 무섭다고? 솔직해도 돼. 사람들은 다들 날 무서워하지. 내 이름 슈렉(Shrek)도 ‘경악’을 뜻하는 독일어 ‘슈렉’(Schreck)에서 따왔어. 내 조상은 윌리엄 스타이그가 쓴 동화책 주인공 ‘슈렉’이야. 나랑 똑같이 울퉁불퉁 못생긴 초록색 괴물이지.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건 자꾸 귀찮게 따라다니는 수다쟁이 당나귀 뿐이야. 나머지는 모두 나만 보면 도망가기 바빠. 그래서 난 늪지에서 혼자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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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용하던 내 생활이 어느 날 갑자기 복잡해졌어. 동화 주인공들이 죄다 내 늪지로 몰려든 거야. 피노키오부터 돼지 삼형제, 피터팬, 신데렐라, 백설공주까지…. ‘파콰드’라는 영주가 동화주인공들을 다 쫓아 냈다나. 난 정말 동화라면 질색이야. ‘능력 있는 왕자랑 예쁜 공주가 오래 오래 잘 먹고 잘 산다’는 늘 똑같고 황당한 얘기. 나처럼 못생긴 괴물은 절대 동화 주인공이 될 수 없어. 뚱뚱하고 못 생긴 공주도.
어쨌든 난 파콰드를 찾아가 따졌어. 그랬더니 성에 갇혀있는 신부감 피오나 공주를 데려오면 내 늪지를 조용하게 해 주겠대. 그래서 공주를 구하러 가게 된 거야. 물론 그 수다쟁이 당나귀랑 같이.
#2.나, 피오나 공주
공주와 용감한 기사의 첫 만남은 당연히 황홀하고 달콤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동화에는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나를 구하러 온 백마 탄 기사는, 맙소사, 키스는커녕 마구 흔들어 깨우질 않나,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당기질 않나. 어쩜, 아름다운 시조차 읊어주지 않더군요. 뭐라고요? 공주병에 걸렸다고요? 아니예요. 난 공주병이 아니라 마녀의 저주에 걸렸어요. 흑흑. 그래서 낮에는 어여쁜 공주지만 해가 지면 뚱뚱하고 못생긴 모습이 된답니다. 진실한 사랑의 키스만이 내 본 모습을 되돌려줄 수 있대요. 날 신부로 맞이하려는 파콰드 영주와 빨리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그런데 이상하죠? 슈렉하고 있을 때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시간도 빨리 가요.
#3. 나, 당나귀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암, 못 속이고 말고. 동물한테는 직감이란 게 있거든. 슈렉이랑 공주랑, 히힝 ‘그렇고 그런’ 것 같아. 히힝. 아참, 그런데 그 공주 있잖아, 좀 특이해. 아니, 엽기적이야. 한번은 말야, 숲에서 로빈 훗 일당을 만났는데, 이단 옆차기로 날려버렸어. 왜, 그 장면 생각나지? ‘매트릭스’에서 본 그 공중정지 발차기 동작. 심지어 ‘와호장룡’에 나오는 ‘머리채 휘두르기’ 권법까지 보여주더군. 공주 맞아? 나중엔 들쥐 통구이까지 먹던데. 와우. 그런데 아까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뭐? 숨 좀 쉬면서 얘기하라고? 그건 따발총 입을 가진 에디 머피한테 가서 얘기해.
#4. 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
하하, 그렇습니다. 요즘은 표정 관리하느라 힘듭니다. ‘슈렉’이 ‘대박’을 터트렸거든요. 디즈니를 나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드림웍스’를 차린 후 드디어 제대로 한 건 했습니다. 이전에 만든 ‘이집트 왕자’나 ‘개미’와는 비교할 수 없죠. 흥행 수익도 벌써 2억 달러를 넘었어요. 지금까지 미국에서 흥행수익이 2억 달러를 넘은 애니메이션은 ‘라이언 킹’ ‘알라딘’ ‘토이스토리2’ 등 세 편 뿐이었죠. 너무 자랑하는 것 같지만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애니메이션으로는 사상 최초로 경쟁부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비결이라. 언론에서는 그럽디다. 저주가 풀린 후에도 못생긴 모습으로 남은 공주와 슈렉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얘기가 기존 동화의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깼다고. 또 동화 ‘백설공주’부터 영화 ‘매트릭스’에 이르는 폭넓은 패러디소재 등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모두 웃을 수 있는 내용도 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등급도 ‘전체가’입니다.
항간의 소문요? 아, 슈렉에서 디즈니 캐릭터를 풍자한 것이 제가 디즈니와 사이가 안 좋아서라는 얘기 말이죠? 파콰드의 성을 꼭 디즈니랜드처럼 묘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들 한다면서요. 하지만 그럴 리 있겠습니까. 그래도 한 때는 제가 디즈니 사장이었는데요.
참, 그나저나 다음달 6일 슈렉이 한국에서 개봉하고 난 후 일주일 뒤에 디즈니가 만든 초대형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잃어버린 제국’도 개봉한다죠?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