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비교 릴레이]연쇄살인범, 그들은 잡히지 않는다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0시 59분


<몬스터>의 요한 vs <도쿄 바빌론>의 세이시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수수께끼에 싸인 그 존재의 정체를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연쇄살인범은 흔히 탐정만화의 몇몇 에피소드를 장식하는 역할에 그칠 경우가 많은데 <몬스터>와 <도쿄 바빌론>은 연쇄살인범을 당당히 주연급으로 모시고 있다.

<마스터 키튼> <해피>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몬스터>의 극중 배경은 독일. 뒤셀도르프의 일본인 외과의사 겐조 덴마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실려온 백인소년을 살려낸다. 그의 이름은 요한. 요한은 치료 도중 쌍둥이 여동생 안나와 함께 병원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후 독일 전역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덴마는 그 사건들이 요한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이 살려낸 이 '몬스터'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 집요한 추적을 시작한다. 요한의 동생 안나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가담한 이 추적은 현재 단행본 14권(세주문화)까지 계속되고 있다.

와 <성전>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그룹 클램프의 작품 <도쿄 바빌론>의 주인공 스메라기 스바루는 억울한 원혼을 달래는 음양사(우리로 치면 무당)다. 수의사인 사쿠라즈카 세이시로가 그를 좋아한다. 세이는 비밀스런 암살집단의 후손. 각종 원혼들을 달래고 물리치는 스바루의 이야기가 중심인 이 작품에는 살인사건들이 <몬스터> 만큼 본격적으로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후반에서야 세이시로가 은밀하게 살인을 해오고 있었다는 것과 세이시로가 스바루를 좋아한 것도 그를 죽이려는 계획의 일부였음이 밝혀진다. 세이시로는 스바루의 쌍둥이 누나 호쿠도를 죽이고, 스바루는 세이시로를 죽이기 위해 뒤를 쫓는다. 허탈하게도 만화는 거기서 끝을 맺는다. 도서출판 (주)대원에서 8권으로 완간됐다.

'요한'과 '세이시로'는 젊지만 오랜 살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요한은 이미 열 살 때부터 살인을 시작하였으며, 스무살인 현재까지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가 없다. 스물다섯 살의 세이시로 역시 열다섯 살 때 첫 살인을 경험했다. 요한이 처음으로 죽인 사람은 자기를 키워준 양부모. 세이시로에게 처음으로 희생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정말 무서운 놈들이다.

요한과 세이시로는 외견상으로는 너무나도 준수한 청년들. 겉보기에 살인범 같이 생긴 살인범이라면 너무 시시하지 않은가? 정돈된 인상과 세련된 매너를 갖춘 그들은 겉으로는 타의 모범이 되는 인간들이다.

금발에 우아한 곱슬머리를 가진 요한은 특유의 미소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요한은 추적자를 교란시키기 위해 여장을 하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스바루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이 인상적인 세이시로는 늘 단정한 정장 차림이다. 세이시로는 냉혹한 살인자의 시선을 감추기 위해 평소에 안경을 쓴다.

이들은 살인하면서도 전혀 공포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살인 동기도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다. 요한의 범행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살인현장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요한은 원한이나 탐욕 때문에 살인을 하진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본색을 보았을 때,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는 것을 즐기고 싶을 때 죽인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에 거리낌이 없고 후회도 없다.

"사람을 죽여도 아무 느낌이 없어"라는 세이시로 역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을 죽인다. 암살집단인 사쿠라즈카 모리의 후손으로서 청부살인을 하기도 한다. 1년간 스바루를 좋아하는 척하는 그는 정말로 특별한 감정이 생기면 스바루를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수고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버린다.

살인 방법은 두 사람이 다르다. 요한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비해 세이시로는 그렇지 않다. 요한은 총을 사용해 직접 살인을 할 때도 있지만 제3자를 시키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하여 자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범행현장이 아무리 피바다가 되어도 요한은 항상 말끔하다. 세이시로의 경우는 무기 없이 자신의 영력(靈力)을 이용해 사람을 죽인다. 그러니 '격투 끝에 살인'이라던가 '난자당한 시체' 등은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둘다 '깔끔하게' 죽이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이들의 정체는 늘 묘연하다. 요한은 범행 현장에 '살려줘! 내 안에 몬스터가 있어' '이것 봐. 내 안의 몬스터가 이렇게 커지고 있어'라는 말을 남긴다. 두 개의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흔적을 남기지 않는 요한은 항상 이름과 신분을 바꿔 출몰한다. 요한을 쫓는 덴마가 경찰에게 요한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용의자로 체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요한은 살인자긴 하지만 아직은 공식적으로 '범인'이 아닌 것이다.

겉보기엔 멀쩡한 세이시로는 가끔씩 심상치 않은 낌새를 드러낸다. 만화를 읽다보면 어린 시절 스바루에게 벚꽃에 관한 오싹한 얘기를 들려주는 정체 모를 인물이 혹시 세이시로와 동일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된다. 세이시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쿠라즈카 모리'에 대한 정체도 의문에 싸여있기는 마찬가지다. <도쿄 바빌론>에서 살인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 용의자를 지목하는 식으로 사건화되지 않기에 세이시로 역시 '범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캐릭터의 이중성 때문에 매력도 두 배인 '요한'과 '세이시로'. 결코 잡히지 않은 두 범인에게서 인간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성을 만나 보시길.

이재연<동아닷컴 객원기자> skiola@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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