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비교릴레이] 성형미인-그들의 변신은 무죄?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5시 05분


<미녀는 괴로워!>의 칸나 vs <사랑의 기적>의 유키노

만화 속 모든 여자들은 간단하게 두 부류로 나뉜다. 예쁜 여자와 안 예쁜 여자. 둘에 대한 차별은 가차없다. 머리카락에서부터 발끝까지 묘사에 공을 들이는 정도만 해도 천양지차다. 안 예쁘면 주연은 물론 조연도 허락되지 않는 냉혹한 만화계의 현실. 여기에 최근 성형미인들이 천연미인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등장하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그 성형미인들. <미녀는 괴로워!>의 칸나즈키 칸나와 <사랑의 기적>의 구라타 유키노다.

스즈키 유미코 작 <미녀는 괴로워!>에 등장하는 대학 식당 종업원 칸나는 짝사랑하는 대학생 코스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진 돈을 다 털어 성형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가련하게도 칸나는 화려하게 변신한 자신의 미모에 적응하지 못하여 여러 모로 고충이 큰 생활을 하고 있다. 천연 미인들이 타고난 자신감으로 매사에 당당하게 행동하는 데 비해, 칸나는 뚱녀시절의 소극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해 심한 정체성 혼란 상태에 빠져있는 중이다. 만화는 아직 '미녀 마인드'를 갖지 못해 괴로운 칸나가 코스케와 사귀며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코믹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는 (주)서울문화사에서 현재 5권까지 나와있다.

반면 모리타 유코의 <사랑의 기적>은 코믹한 요소를 배제한 연속극 스타일의 만화다. 천연미인인 타에꼬와 성형미인인 유키노가 주인공.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유키노는 배우로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인도 불사하는 악녀가 된다. 그런 유키노 때문에 부모를 잃은 타에꼬는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같이 연예계에 뛰어들게 된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되었던 미니시리즈 <이브의 모든 것>을 떠올리는 착한 여자와 못된 여자의 대결 구도가 비슷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 만화 역시 서울문화사에서 8권으로 완간했다.

칸나와 유키노는 둘다 첨단 성형의학의 눈부신 쾌거라 할만하다. 칸나는 온 몸을 성형해서 미녀로 개조되었다. 코높이기는 기본 메뉴. 겨드랑이는 영구 탈모,배와 다리는 지방흡입술로 처리해 이젠 어디 하나 부끄러운 곳이 없다. 실리콘을 듬뿍 넣은 가슴은 터질듯 빵빵함을 자랑한다. 때로 칸나의 가슴은 운동감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한 나머지 보기가 민망할 정도.

유키노는 얼굴에만 집중적인 성형을 받았다. 일단 광대뼈를 깎고 실리콘을 넣은 데다가 피부를 덧붙였다. 유키노를 수술한 닥터 히지리의 말을 빌리자면 "극한의 성형"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유키노는 '천사의 아름다움'을 갖게 되었다. 다만 안타까운게 있다면 <사랑의 기적>은 작가의 첫 장편만화인 탓에 그림 실력이 미숙해서 '천사같은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유키노를 볼 때 최대한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수술 전의 둘은 보통 이하의 외모 때문에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칸나의 경우 카페에 가도 구석자리만 허락됐다. 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해도 모두 지나쳐버렸다. 심지어 약국에서 임신 진단시약을 사려고 하면 '너 같은 애가 대체 왜 그런게 필요하지?'라는 시선을 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유키노가 당했던 일들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이다. 유키노는 어린 시절 못생긴 외모 때문에 친구가 없는 것은 물론이요, 엄마에게조차 구박을 당하고 자랐다. 사춘기 때는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마음을 고백했다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감금당한 후 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일까지 겪었다.

그래서 이들은 예뻐진 후 외모 때문에 받았던 피해를 보상받으려한다. 이들이 가진 보상심리의 공통점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인데 때로는 도를 지나치는 수준이다.

칸나는 못생겼을 때 자기가 당했던 일들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미인이 되었을 땐 대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일일이 시험하는 것이다. 카페에 가면 전망 좋은 창가에 앉게 되고, 손만 쳐들면 사방에서 택시가 그녀를 에워싼다. 약사는 임신진단시약을 건네주면서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띄운다. 여기에 재미를 들인 칸나는 '미인은 뭔 짓을 해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망상에 빠져 종종 일부러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유키노는 배우가 되어서 모두에게 자신의 미모를 인정받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으로 어두운 과거를 보상받으려 한다. 그녀는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과거를 날조한다. 유키노는 보상심리에 복수심이 더해져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남들에게 똑같이 겪게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점점 구제불능의 악녀가 되어 버린다.

못난 외모 때문에 받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성형을 한 칸나와 유키노. 아이러니컬하게도 성형으로 미인이 된 후에는 성형 자체가 콤플렉스가 된다. 그래서 칸나는 천연미인 앞에서는 위축감을 느끼고 자신이 성형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시골에서 올라온 동생을 모른 척 해버리기도 한다.

유키노 역시 수술을 안하고도 예뻐진 타에꼬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자신이 수술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후유증이 생길까봐 늘 불안에 떤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던데, 어찌들 그리 소심한지 보는 이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초일류 외모에 뚱녀의 내면을 가진 칸나와 천사의 외모에 악마의 내면을 가진 유키노. 독자들은 이 둘을 통해 여성들이 외모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 것인지를 공감해 보시길.

이재연<동아닷컴 객원기자> skiola@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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