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릴레이 비교]대를 잇는 명도둑들

  • 입력 2000년 12월 5일 11시 39분


<루팡3세> 루팡3세 vs <왕도둑 징> 징

"훔치는 즐거움이 보석보다 아름답다."

<루팡3세>의 주인공인 루팡3세의 말이다. 도둑은 살인범이나 강간범 등 다른 범죄자들과는 달리 왠지 매력 있게 보일 때가 있다. 거기다 의적처럼 무능한 공권력을 엿먹이면서 억압적인 법제도를 간단히 무시하는 수준이 되면 스타가 되기도 한다.

일찍이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괴도 루팡>이나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한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처럼 탁월한 예술적 안목을 지닌 핸섬한 남자가 도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창작미디어에서 단행본 6권까지 출간된 몽키 펀치의 <루팡3세>는 제목 그대로 괴도 루팡의 손자임을 자처하는 루팡3세가 주인공이다. 루팡3세는 본명이 카츠오 카츠히코인 작가의 필명 몽키처럼 원숭이를 닮았으며 할아버지의 명성에 부끄럽기 않게 전세계의 이름난 보물이나 미술 작품 등을 털러 다닌다.

그러나 스케일 만큼은 프랑스를 주무대로 했던 할아버지보다 훨씬 커서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미국을 넘나들며 절도 행각을 벌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국제관계에도 곧잘 연루된다.

루팡처럼 대를 잇는 도둑의 이야기는 영화 <패밀리 비즈니스>, 드라마 <도둑의 딸>에도 등장했다. 쿠마쿠라 유이치의 <왕도둑 징>의 주인공 징도 마찬가지다. 별도 훔친다는 전설적인 도둑 일가의 후손인 징은 아무리 높게 봐도 15살이 넘지 않았을 것 같은 꼬마다. 루팡 3세가 실제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징은 바다에 유령선이 떠있고 공룡이 하늘을 나는 가상의 세계를 돌아다닌다. <왕도둑 징>도 <루팡 3세>처럼 징이 귀중품을 손에 넣기 위해 겪는 모험이 만화의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왕도둑 징>은 서울문화사에서 7권까지 나와있다.

루팡3세는 달라진 시대에 맞게 채권서류나 현금 등을 훔치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처럼 보석이나 그림, 금괴 훔치는 걸 좋아한다. 특히나 '세계 최고'나 '세계 유일'의 수식어가 붙는 물건들은 무조건 좋아한다. 때문에 홍콩 보스의 집에서 세계최고의 보석 '드래곤 아이'를 훔치고, 미디어 재벌의 집에서 세계 최대 사이즈의 성경을 훔친다.

반면 가상세계의 징은 도둑들의 도시에서 '인어의 생명체를 가진 보석'을, 시간이 지배하는 도시 아도니스에서 '혼신의 포도 한송이'등을 훔친다.

이들은 물건을 손에 넣는 것 못지 않게 훔치기는 과정을 즐기며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아마도 선조가 내려준 이들의 가훈은 '나는 훔친다. 고로 존재한다'쯤이 아닐까.

루팡3세의 특징은 목표물을 입수하기 위해 007을 방불케하는 신무기를 동원해 대규모 '작전'을 펼친다는 것. 루팡은 싸움을 잘 못하는 대신 명사수 지겐과 고수 검객 고에몽을 늘 동반하고 팀 플레이를 한다. 지겐과 고에몽이 방해꾼을 맡으면 변신의 귀재인 루팡은 <미션임파서블2>의 톰 크루즈처럼 얼굴을 휙휙 바꿔가며 '물건'에 접근한다.

징은 꼬마임에도 달랑 까마귀 한 마리만 데리고 다닌다. 엄청나게 여자를 밝히는 이 까마귀 '킬'은 위기 상황에선 징의 오른손에 합체(?)되어 '킬 로얄'이라 불리는 가공할 화염을 내뿜는다. 징은 그런 요란한 무기를 쓸 수 없을 때는 나이프로 방해꾼에게 대적한다. 그리고 나선 갖가지 황당한 임기응변의 전법으로 물건을 손에 넣는다. 좀 우습긴 하지만 소년만화의 특성상 그 과정에선 항상 한가지 이상의 '정의'가 실현된다.

마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통치자가 자신의 공적을 만방에 알리고자 하는 것처럼, 루팡3세나 징은 자신을 숨기기보단 범행 후에도 늘 이름을 떨치길 좋아한다. 그래서 이 둘은 일단 외부에서 접근할 땐 숨어들어가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보란 듯이 보물들을 가져간다.

루팡3세와 징은 언제나 무언가를 훔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매번 어떻게든 눈 앞의 악조건을 뚫고, 갖가지 비상사태를 해결해나가는 이들의 삶은 치열하고, 원하는 걸 손에 넣은 후 즐기는 걸 보면 멋이 느껴진다. 왠지 재미로 그치기엔 아까운, 본 받고 싶은 자세다.

이재연 <동아닷컴 객원기자>skiola@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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