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애니메이터는 시간에 대해서 음악가와 같은 감각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애니메이션 작업은 음악과 일치되려는 노력 그 자체입니다. 여기 자벌레 한 마리가 있다고 합시다. 단순한 잔가지 형태의 이 자벌레를 상상력이 넘치는 움직임으로 연출하려면 어떻게 애니메이팅(동화)하여야 할까요? 당연히 음악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디즈니의 경우는 심지어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하죠. 1940년도에 이미 <환타지아>를 통해서, 최근 <환타지아 2000>에서도 우리는 그 풍부한 맛을 흠뻑 느낄 수 있었죠.
영화에서 녹음을 하는 방식은 통상 두 가지가 있어요. 동시녹음과 후시녹음이죠.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대사와 현장음향 등을 촬영과 동시에 녹음하는 것이 동시녹음입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이런 동시녹음은 불가능해요. 제작과정이 한 프레임씩 촬영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죠. '후시녹음(애프터레코딩 afterrecording)'의 경우는 촬영이 끝난 후, 즉 편집이 완료된 필름을 기준으로 녹음합니다.
하지만 보다 실감나는 애니메이션의 사운드를 위해서는 '사전녹음(선녹음 prerecording = 현장에서는 종종 프레스코 prescore라고 한다)'이 원칙이죠. 캐릭터의 대사가 선행되어야 그 캐릭터의 연기와 동작 등이 세밀하게 그려질 수 있거든요. 효과음이나 배경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니메이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기대하려면 정확한 타이밍이 사전에 약속되어야 가능하죠. 물론 후시녹음 방식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그림에 사운드를 입히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죠. 그러나 아무래도 외화의 더빙판을 보는 것 같은 어색함을 지울 수 없겠죠.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으로 화면의 시각을 좌우하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즐기는 애니메이션은 그림 또는 입체로 표현되는 대상물과 우리의 시선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죠. 이때 이를 매개하는 것이 카메라입니다. 따라서 카메라 워크로 펼쳐지는 스크린 화면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기능과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거죠. 극단적인 앙각(카메라를 낮은 곳에 위치시켜서 대상을 올려 찍는 구도)을 묘사하여 위압적인 권위나 공포가 드러나도록 하는 예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요.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우리 눈의 시점을 어느 곳에도 둘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무한한 상상 속의 어떤 곳에도 카메라가 위치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일반영화와 다른 점이기도 하지요. 현실에서 도달할 수 없는 카메라 워크를 구사할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은 그대로 애니메이션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그려 보여야 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단 1초라도 시간이라는 변수를 고려한 전후관계가 부연되죠. 유능한 애니메이터라면 이렇게 카메라 시점을 결정하고 그 연속적인 처리를 더불어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캐릭터가 정지된 시야로 포착되더라도 만화처럼 사각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줌인(zoom-in) 등과 같은 카메라 워크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동시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미술적인 내용을 제공하는 선이나 색채, 형태와 비례 등도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결정하는데 특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러한 미술적인 요소들은 상업 애니메이션의 분업적 제작시스템에서는 상대적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반해 실험 애니메이션 등 예술적 작업에서는 그 차별성을 더욱 드러내는 쪽으로 강화되죠. 아울러 미술 표현의 도구가 컴퓨터 등으로 확대되면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규정하는 구성요소들은 더 많은 변수를 첨가시키면서 내일의 애니메이션으로 발전해 가는 중입니다.
이용배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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