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면 우리의 하루는 우울하다. 그런데 이런 말을 자기 사상의 기초로 삼은 철학자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Gadamer)는 우리의 삶에서 선입견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보았다.
선입견이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이전 우리가 미리 지니고 있는 견해이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을 모두 버리고 머리 속을 텅 비워보자. 그리고 하루를 시작해보자. 그럴 경우 우리는 직장에서의 업무 판단은 물론이거니와 문밖에 나가서 거리를 걷는 일조차 힘들어진다. 문은 당기지 않고 밀어야 열린다, 파랑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너야 한다, 자동차와 부딪혀서는 안 된다는 등의 지식이 우리의 머리 속에 먼저(先) 들어와(入) 있지 않다면 우리는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다.
◇선입견이 세상 보는 눈 지배
물론, 필수 불가결하다고 해서 선입견이 무차별적으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선입견도 있고, 나쁜 선입견도 있다. 그렇지만 선입견 없이 세상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좋은 선입견을 통해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가다머 주장의 핵심이다.
뇌성마비의 시련을 딛고 최근 미국 대륙의 횡단에 성공한 최창현 씨는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장애인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인 ‘disabled man’으로 표현합니다. 제가 성공했으니까 앞으로는 장애인을 ‘할 수 있는 사람(abled man)’으로 불러줄 것을 건의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영어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자 언어에도 수많은 나쁜 선입견이 개입돼 있다. 영어의 경우,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흑색과 백색이란 단어를 둘러싼 선입견이다. 거짓말은 부정직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지만, 하얀 거짓말(white lie)은 선의의 거짓말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 유머는 좋고 즐겁지만, 블랙 유머(black humor)는 추하고 불쾌하다.
◇천사를 검게 그린다면…
이런 흑백 차별적 선입견은 시각 언어인 이미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천사는 항상 희게 그려지고 악마는 항상 검게 그려진다. 그리고 백조가 곧잘 왕자나 공주로 변신한다면, 검은 오리는 미운 오리 새끼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장애인은 아무 능력도 지니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그 동안 잠재해 있던 ‘다른 능력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사람(differently abled person)’이다. 검은 색 또한 추하고 악한 색이 아니라, 흰색과는 다른 표현력을 지녔을 뿐이다. 중요한 점은 잠재적 힘을 개발하게 하는 일이지 그 힘을 무력화시키거나 악화시키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그 타인의 잠재적 능력까지도 박탈시켜 버리지는 않나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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