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책 ‘J-POP 진화론’은 J-POP을 단순히 미국 문화의 영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문학 전공의 도쿄대 교수. 대중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이 책에 보이는 그의 음악적 분석은 단연 빛난다.
사토는 록 음악이 애용한 음계가 일본의 토착적인 음계와 매우 흡사하다고 본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록에 쉽게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사토는 주장한다.
이 같은 인식은 토착 문화와 외래 문화의 관계 인식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중 음악가들은, 유행가 속에 어떤 식으로 서양 음악, 흑인 음악의 감각을 넣을까 고심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J-POP’에서는 기존의 틀과 가치 구조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화풍(和風· 일본풍), 양풍(洋風), 흑인풍 어느 쪽에도 구애받지 않고 이들을 절충한 곡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사토는 말한다.
즉, 쾌(快)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의 ‘J-POP’이라는 설명이다. 사토는 여기에서 ‘근대’의 틀을 넘는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쾌(快)한 감각과 이미지로 환원시켜 버린 결과, 육체적인 ‘본음(本音)’이 배제되어 버린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음악 산업이 거대한 비즈니스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음악이란 자연발생적인 표현이 아니라, 팔기 위한 상품이 된다. 사실 ‘J-POP’에서 중요한 것은 가수 연주자 작곡가보다는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다시 말하면, 창조보다는 편집이 중요하고, 기성품화된 요소를 꿰어맞춤으로써 새로운 작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품을 맞춰서 제품을 생산해 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둡고 무거운 가치의 서열 구조를 부수고 겨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자, 이번에는 어느 사이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의 과정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이것은 비단 유행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는 모든 현상의 공통항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연숙(히토츠바시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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