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나무 아래서 널 낳으려고 결심했다'/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 지음 /겐토샤(幻冬舍)
패전 후 한 동안 일본 좌익운동의 중심은 공산당이었다. 비합법단체였던 공산당이 전후(前後)에 합법적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일본 좌익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련 공산당의 지도 하에 있었던 일본 공산당은, 본디부터 규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데다가, 그 방침을 자주 변경해, 많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곤 했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공산당이 주도하는 좌익운동에 대한 불만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좀더 자연 발생적인 운동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1960년의 '안보투쟁'['안보(안보)'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줄임말이다]을 전후한 무렵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이들은 '반제국주의·반스탈린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 이를 일본에서는 통칭 '신좌익운동'이라고 한다.
이러한 좌익운동의 흐름 속에서 1960년 후반의 '대학 투쟁' 과정에서 맹활약을 했던 이른바 '젠교토(全共鬪) 운동'이 탄생하게 된다. 젠교토(全共鬪) 운동은 각 대학에서 생겨난 운동의 느슨한 연합체이다. 거기에는 중앙집권적인 조직이나 규율도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젊은이 문화'와도 끈을 맺는 등의 새로운 풍속마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명확한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사그러지는 것도 빨랐다. 1970년대에 들어 젠교토(全共鬪) 운동은 급격하게 그 위세가 꺽였고,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무장투쟁 등의 과격한 주장을 내세운 섹트(sect)가 줄줄이 생겨 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가 이끄는 '일본 적군(赤軍)'이다.
'적군(赤軍)'이란 이름이 붙은 섹트는 여럿 있었는데, 그들이 저질렀던 사건 중에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적군파 몇 명이 비행기를 하이제크하여 북한으로 갔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본 최초의 하이제크 사건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서 또 다른 섹트와 합친 '연합 적군'은, 동지 12명을 '혁명투사'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린치 살인을 한 뒤, 산장에 숨어서 기동대와 총격전을 벌인 일도 있었다. 이 비참한 연합 적군 사건은 많은 젊은이들을 좌익운동에서 멀어지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시게노부가 이끄는 '일본 적군'은 '국제주의에 근간을 둔 무력투쟁'을 방침으로 내세우고 팔레스티나로 건너가, 팔레스티나 해방기구의 산하로 들어갔다. 일본 적군은 팔레스티나 해방 투쟁에서 연거푸 화려한 '전과'를 올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1974년에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점거 사건인데, 시게노부는 그 사건의 주모자로서 국제 지명수배를 당한다. 그리고 26년 후인 2000년 11월 일본에 잠복하던 중 체포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시게노부가, 팔레스티나에서 태어난 그녀의 딸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올렸던 상신서이다. 이 책은, 시게노부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좌익운동에 눈을 뜨게 된 과정, 그리고 팔레스티나에서 펼쳤던 여러 운동들을 담담한 필치로 적어 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귀중한 시대의 증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시게노부는 싱싱하고 상쾌함마저 느껴지는 '미모의 여성 혁명가'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녀가 '혁명가'이든 '테러리스트'이든, '신좌익운동' 속에서 밝게 빛나는 '영웅'의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떠오르는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혁명에 대한 그녀의 신념에는 의문이 없다고 할지언정, 정치운동이란 개인의 정열이나 '진지함'만으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문 중의 하나는, 시게노부가 일본의 혁명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왜 팔레스타인으로 갔는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용감한 혁명전사가 여럿 등장한다. 그러나 묵묵히 일상을 살아 가는 노동자와 농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점이다.
시게노부는 체포된 후 '앞으로도 무장투쟁을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은 그 시대, 민중이 필요로 하는 투쟁을 해 왔다. 지금의 일본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시게노부가 활약했던 1970년대초에 일본의 민중에게 무장투쟁은 필요했던가, '민중이 필요로 하는 투쟁'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이 같은 물음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영웅이 없는 나라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불행한 것'이라는 브레히트의 말이, 이 책을 읽고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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