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빅스의 ‘히로히토-근대 일본의 형성’은, 2001년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책이다. 종래의 천황상(天皇像)을 완전히 뒤엎음으로써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었다. 이 번에 그 책이 ‘쇼와(昭和) 천황’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번역돼 나왔다.
쇼와 천황의 재위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인데, 그의 위치는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로 확연히 갈라진다. 전전의 천황은 일본제국의 유일한 주권자이자, 군부의 ‘대원수’였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엄밀하게 말하면 1947년의 일본국 헌법 발포 이후)에는, 전후에 제정된 ‘평화헌법’ 하에서 새로운 천황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서, 나라의 ‘상징’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모든 정치 행위와 멀어졌다. 천황은 사실은 전쟁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만주사변에서 중일 전쟁 및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전쟁 확대는 군부가 주도한 것으로 천황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담론 등은 이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빅스는 그러나, 아주 치밀하고도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서, 쇼와 천황이 내각 인사에서부터 외교 정책에 이르는 여러 정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더군다나 쇼와 천황은 군의 최고사령관인 ‘대원수’로서의 역할도 매우 자각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군의 전쟁 확대 방침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는 것도 명백히 밝혀 냈다.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저자는 쇼와 천황을 폭악한 독재자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천황교육 과정 속에서 쇼와 천황이 겪었던 주위 사람들과의 심리적 갈등까지 다루는 등, 그는 정말 ‘인간답게’ 쇼와 천황에 접근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유년기의 황태자를 천황으로 길러 내는, 세심하게 계산된 ‘천황 교육’을 밝힌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금의 극성스러운 입시 교육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완벽한 관리교육이었다.
그런데 천황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은, 전전에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왜냐하면 천황은, ‘인간’이 아니라, ‘아라히토가미(現人神)’였기 때문이다. 패전 후 쇼와 천황은 ‘자기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른바 ‘인간선언’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라히토가미’로서의 천황의 이미지가 완전히 지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도 천황이 많은 비밀과 금기에 싸여 있는 존재로 비춰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천황의 취임식이라 할 수 있는 ‘다이조사이(大嘗際)’는 여전히 극비리에 행해질 뿐만 아니라, 쇼와 천황이 쓴 걸로 여겨지는 일기는 지금까지도 궁내청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것이 공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금기 가운데에서도 최대의 금기는, 뭐니뭐니 해도 ‘천황의 전쟁 책임’ 문제이다.
이 책의 일본어 번역의 제목인 ‘쇼와 천황’은, 천황을 둘러싼 금기의 일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영어의 원제는 ‘히로히토-근대 일본의 형성’이었는데, 일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무장 변신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 쇼와 천황을 ‘히로히토’라고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천황제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천황 일족에게는 성도 없다). 천황을 감히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신성한 존재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감각이 일본 사람들의 골수에까지 박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테러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은 천황에 대한 거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지금도 면면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사실이다.
물론 이 같은 천황 숭배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득한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까지도 없다. 근대 일본의 형성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그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금까지 수 많은 학자들이 밝혀낸 것이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인 빅스의 결론이기도 하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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