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파리에서]'테제베의 진실'

  • 입력 2003년 1월 17일 19시 07분


◇테제베의 진실/프랑수아 스타스 지음/쇠유출판사 2002년

파리 지하철 14번선은 필자가 즐겨 타는 지하철이다. 파리 중심가의 마들렌 교회에서 동쪽 ‘비블리오테크(도서관)’를 동서로 잇는 이 노선에는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정차하는 역이 7개로 다른 노선들에 비해 훨씬 적고, 종점이 파리 시내에 있어서인지 이용하는 승객수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가장 최근에 완공된 이 지하철은 전자동으로 운행돼 속도가 매우 빠르고, 또한 운전석이 없어 차량 맨 끝칸에서 지하 터널 내부를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선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14번 선의 동쪽 종점, ‘비블리오테크’ 역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파리의 새 명물인 국립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공식 이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지만,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처음 부른 대로 ‘테제베(TGB)’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다름 아닌 ‘매우 큰 도서관’이란 뜻의 프랑스어 약자이다. ‘테제베’는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착공되어 1996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는데, 도서관의 외양이 무척 특이하다. 총 1200만권의 서적을 보관하는 4개의 큰 타워 유리건물이 성벽 망루처럼 사방에 둘러 서 있고, 도서관 열람실은 마치 ‘독서삼매’에 빠진 독서가들을 속세와 유리시키려는 듯 지하 1, 2층에 깊이 침잠해 있다. 말 많은 호사가들은 이를 ‘뒤집어 놓은 탁자 모양’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ㅁ자형으로 된 지하 열람실 안에는 작은 인공 숲도 꾸며져 있다. 옛 리슐리외 국립도서관의 그림들을 대신하여 ‘살아있는 숲’을 조성하려 했다는 것이 이 건물을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의 설명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은 후, 남는 일은 자연을 관조하는 것일 뿐’이라는 볼테르의 말을 가슴에 새겼던 것은 아닐까?

새 국립도서관 건립은 미테랑 전 대통령이 시도한 문화사업 중 맨 마지막에 실현된 대역사였다. 17세기 마자랭 재상 이후 프랑스를 통치한 국가원수 중 가장 책을 좋아했다는 미테랑 전 대통령은 ‘테제베’의 건축에 무려 12억유로나 쏟아부었다. 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샤를 드골’ 핵 항공모함의 절반 가격이다.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투자가 가능했던 것은 한마디로 국가 경쟁력은 모두 ‘문화’에서 나온다는 그의 개인적 신념 때문이었다.

‘테제베의 진실’은 이처럼 새 국립도서관과 관련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들을 숨김없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전 국립도서관장인 스타스가 자신의 임기(1998∼2001년)가 끝난 후 집필한 책이다.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기술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새 도서관 건설이 미테랑 전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이기는 했지만, 프랑스식 허영심과 오만함을 드러내는 무모한 시도였음도 지적하고 있다. 또 건설 당시에 벌어진 논쟁들과 아울러 98년 개관 이후 발생했던 전산시스템 고장, 파업, 화재, 침수 사건 등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그래도 ‘테제베’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결론이 위트 있다. 원제 ‘La V´eritable Histoire de la Grande Biblioth´eque’ (Seuil·2002).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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