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폴 엡스타인, 댄 퍼버 지음·황성원 옮김
464쪽·1만6000원·푸른숲
1976년 이후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병원체는 에이즈, 에볼라 바이러스, 신종 한타바이러스 등 40여 가지에 이른다. 콜레라처럼 오랫동안 잠잠하던 질병도 다시 나타나 기승을 부렸다. 1980년 이후 천식 발병률은 세계적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두 배 이상 늘었다. 의학이 발달하고 보건과 위생 환경이 나아지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저자는 그 이유로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룬 책은 차고 넘칠 정도지만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질병의 위협’에 초점을 맞춘 데서 이 책의 색깔은 뚜렷하다. 저자 역시 환경운동가도 생태학자도 아닌 의사다.
2003년 유럽 전역을 달군 폭염으로 5만2000여 명이 사망했다. 프랑스의 포도 재배 기록에 따르면 이 같은 폭염은 1370년 이후 처음이었다. 기후변화가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극심한 더위로 몸이 약해지면 여러 질병에 취약해지니 간접적인 사망자까지 따지면 그 피해는 훨씬 클 것이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창궐한 것도 기후변화의 결과다. 기온이 0.5도만 높아져도 모기 군집이 두 배로 증가하고 원래 모기가 거의 없는 고원지대에까지 말라리아가 확산될 수 있다.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 모기가 여름철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앵앵거리는 것도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엘니뇨(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로 인해 인도 펀자브 지역과 베네수엘라에는 말라리아, 태국에는 전염성 뎅기열, 방글라데시에는 콜레라, 페루에는 설사병, 미국 남서부에는 한탄바이러스 폐증후군이 확산됐다. 폭풍과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모기나 설치류, 물을 통해 전염되는 감염성 질병이 속출하고, 가뭄은 수인성 질병과 뎅기열을 부른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천식을 유발한다. 실험 결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진해질수록 돼지풀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돼지풀 꽃가루는 더 많이 만들어져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의 위험이 상당히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을 향해가고 있어 산업화 이전인 1800년경의 280ppm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이쯤 되니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저탄소 경제를 일구는 것은 환경 보호의 차원을 넘어 인간 생존을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기후변화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만 질병의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질병을 퍼뜨릴 수도 있고, 빈곤 때문에 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보건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역은 질병에 더욱 취약하다.
그러나 저자는 기후가 변할수록 극단적인 날씨를 유발해 전염성 질병이 확산되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기후변화가 당장 나와 가족의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녹색경제 일구기’ ‘탄소배출 줄이기’는 더이상 사치스러운 캠페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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