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과학기술의 시대… SF소설은 문학의 현실이자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일 03시 00분


배명훈 씨(37)의 새 장편 ‘첫숨’(문학과지성사)은 달과 화성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된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공간적 배경은 우주에 떠 있는 많은 스페이스콜로니(우주에 마련된 정착공간을 가리킨다) 중 한 곳이다. 시공간에서 보듯 ‘첫숨’은 SF소설이다. 내부조사관 최신학, 무용수 한묵희 등 주요 인물들이 비밀무기를 찾고자 우주를 헤매는 SF의 줄거리에, 소설에서 우월한 문화 권력을 누리는 화성인을 보여줌으로써 계층과 권력의 문제를 살핀다.

배 씨는 한국에서 많지 않은 SF 작가들 중에서도 드물게 순문학에서 인정받은 작가다. 평론가 신형철 씨는 “그의 소설이 궁극적으로 가 닿는 지점은 (…) 진지한 인간학적 물음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일찍이 의미를 부여했다. SF소설이 대개 그렇듯 과학적 상상력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학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SF는 장르소설 가운데서도 대중성이 처지는 분야다. 추리나 미스터리, 호러물에 비하면 SF는 ‘전문적’으로 인식된다. 북스피어 출판사의 김홍민 대표는 “SF가 장르물 중에서도 ‘고퀄’로 여겨지는 데다 리얼리즘을 추구해 온 한국문학의 전통과는 잘 맞지 않아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마션’이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 과학영화가 국내에서 유난히 큰 인기를 모았던 것을 생각하면, SF소설에 대한 관심이 그에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창작집단의 토양이 풍부하진 않지만 활동력은 커가고 있다. 김창규 정소연 씨 등 SF 작가들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박민규 김중혁 윤이형 장강명 씨 등 순문학 작가들도 SF를 차용한 소설을 써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김보영 씨의 단편 ‘진화신화’는 올 초 미국의 SF 웹진 ‘클라크스 월드’에 소개되기도 했다. 때마침 중국 소설가 류츠신이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아시아인으론 처음으로 수상해, 아시아의 SF소설에 대해 세계가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박상규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SF소설은, 엔터테인먼트의 기능도 있지만, 과학기술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는 미덕이 있다”고 설명한다. SF소설이 보여주는 세계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아닐지라도 긍정적 시나리오는 가능성을, 부정적 시나리오는 경고를 준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서양의 과학기술에 한국적 정서나 문제적 성찰이 결합된 작품이 여타의 외국 SF소설과 구별되는 한국형 SF소설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대혁명과 중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류츠신의 휴고상 수상작 ‘삼체’에서 보듯 한국형 SF소설도 충분히 해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공간에 계층 권력의 문제를 담은 배명훈 씨의 ‘첫숨’과 역사적 기록과 진화 이론을 버무린 김보영 씨의 ‘진화신화’ 등은 그 같은 가능성이 담긴 중요한 걸음들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판타지#과학기술#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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