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낯선 작가 낯선 책이 준 낯선 끌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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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 16명의 독자가 모였다. 내년 초 출간되는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47)의 소설 ‘나의 투쟁’의 시독회 자리였다.

독자들은 시독회에 앞서 소설 첫 권의 가제본을 받았다. ‘나의 투쟁’에선 작가의 삶에 대한 고백뿐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등 가족사가 자세하게 펼쳐진다. “이 작가처럼 나의 삶에 대해 쓴다면 이 정도로 상세하게 쓸 수 있을지…. 기억력부터 점검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요즘은 ‘나’, ‘개인’이 강조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나’의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로 성찰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같은 날 강남의 한 서점에서는 독자 35명이 모인 ‘오르부아르 북파티’가 열렸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 ‘오르부아르’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책을 읽은 사람뿐 아니라 읽지 않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빠르게 읽히면서도 중간 중간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있었다.” “100년 전 프랑스가 배경인데 오래된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아직 보지 않았다는 한 여성 독자는 행사를 마친 뒤 “안 읽은 책이어서 (모임이) 부담스러울 줄 알았는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책 얘기를 듣는 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 행사들의 특징 중 하나는 책이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오르부아르 북파티를 기획한 박성열 열린책들 팀장은 “그간의 책 이벤트가 저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저자 위주의 행사였던 데 비해 이번에는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행사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북파티의 무대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나의 투쟁’ 시독회에선 사회자도 없이 독자들이 저마다 가제본을 들춰가면서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나눴다.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낯섦’이다. 크나우스고르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다. 시독회의 독자들 모두 이 낯선 작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르부아르 북파티에서 책을 완독한 사람은 35명 중 5명이었다. 르메트르는 국내에 어느 정도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날 대부분의 참석자들에게는 ‘오르부아르’가 낯선 소설이었다.

‘나의 투쟁’ 시독회를 진행한 한길사의 이주영 편집자는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독자들이 책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일 새로운 영상, 재미난 노래와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 책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읽는 행위가 무겁게 느껴지는 시대다. 2015년 마지막 달 같은 날 열린 이 행사들은 이 시대에 책에 대한 뜨거운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낯선 작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 욕망에 전염돼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나의투쟁#오르부아르#시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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