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들이 맥그리거에게 단 한번에 ‘필’이 꽂혔던 이유는 ‘트레인스포팅’에서 정상과 광기를 오가는 그의 묘한 캐릭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마약에 찌들어 살던 주변부 청년 랜턴이 이기 팝의 격렬한 록 음악과 함께 거리를 질주하던 모습이 콕 박혀 있다.
그의 진정한 매력은 마이너리티 냄새가 팍팍 묻어나올 때 발휘된다.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에 이어 ‘벨벳 골드마인’ 때의 로커 모습도 그랬고 ‘아이 오브 비홀더’에서 애슐리 주드의 뒤를 좇는 바보 같은 첩보원 때도 나쁘지 않았다. 주요 배역으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에서 껄렁껄렁한 행정병으로 나올 때도 맥그리거다웠다. 그럴 때 그의 영국식 악센트는 더할 나위 없이 귀에 착착 감긴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원한 청년일 수만은 없다. 71년생이니 이제는 30대 중반에 다가선다. 세상에 머리를 쾅쾅 박아대기만 하기 보다는 한편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은 심정이 생길 만한 때이다. 그는 계속 마이너리티 이미지에서 로맨틱하고 편안한 연인의 이미지로 변화를 시도해 왔다. 신작 ‘빅 피쉬’는 그런 노력의 정점이다.
대니얼 월러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빅 피쉬’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곧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다. 영화 속 아들은 세상의 아들이 늘 그렇듯, 지금껏 아버지가 들려준 인생유전의 이야기가 대부분 다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통신사 기자인 아들은 비록 차갑고 건조하더라도 아버지가 눈을 감기 전 진실을 고백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참고로 얘기하자면 이 영화를 만든 팀 버튼 감독은 요즘 영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엄청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라고 하는 것이 ‘빅 피쉬’의 아들처럼 냉혹하게 세상의 진실을 전달하는 미디어가 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니면 아버지처럼 비록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현실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는 판타지가 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맥그리거는 이번 영화에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역할을 맡아 감독이 고민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대신해서 전달해 준다. 그의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차가운 진실만을 전달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번 영화 ‘빅 피쉬’로 비로소 초기작 ‘트레인스포팅’과 함께 극단의 이미지를 오가는 경계선 위의 배우가 됐다. 다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3’가 곧 나온다니 그게 걱정이다^^.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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