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인 더 컷’의 멕 라이언

  • 입력 2004년 4월 16일 21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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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무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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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의 나이도 이제 마흔셋이나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멕 라이언 하면 언제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얘기한다. 그것 참 세월 지나가는 걸 모르는 소리다.

어쨌든 샐리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콱 박힌 사람들에게 그의 대표작을 물으면 그와 비슷한 작품들을 열거하기 일쑤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프렌치 키스’ ‘애딕티드 러브’ ‘유브 갓 메일’…. 그러나 그런 작품들은 이제 라이언조차 지긋지긋하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실제로 요즘 그를 내세운 로맨틱 코미디는 산산조각, 흥행에서 참패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휴 잭맨과 호흡을 맞춘 ‘케이트 앤 레오폴드.’ 이 작품은 미국 내에서도 그랬지만 국내에서도 언제 개봉됐는지 모른 채 지나갔다.

하긴 라이언은 이제 정말로 귀엽고 순수한 이미지를 벗을 때가 됐다. 좀 더 진지한 연기 세계를 보여줄 시기가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들이 애써 외면해서 그렇지 본인은 그간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짐 모리슨의 애인으로 나름대로 퇴폐미를 과시했던 ‘도어즈’가 그랬고, 알코올 중독자 연기를 선보였던 ‘남자가 사랑할 때’, 그리고 ‘커리지 언더 파이어’ ‘프루프 오브 라이프’가 그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멕 라이언의 이런 변화는 늘 2%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이미지를 바꿨다가 다시 자신의 ‘안전지대’인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로 컴백하곤 했다.

그가 호주의 페미니스트 감독 제인 캠피온을 만난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연기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역시 호주 출신의 배우 니콜 키드먼이 제작을 맡은 캠피온의 신작 ‘인 더 컷’에서 멕 라이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매우 황폐하고 고독한 내면의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녀가 특히 돋보이는 것은 남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욕구와 남성을 향한 성적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이중적 욕망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전적으로 캠피온의 연출력 덕분이다. 멕 라이언의 또 다른 잠재력을 이렇게 확실하게 이끌어 낸 감독은 지금껏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 더 컷’은 여성주의 영화가 아니다. 여성주의적 시선이 은근히 스며들어 있는 일종의 로맨틱 스릴러다. 영화사에서는 에로틱 스릴러라며 ‘에로틱’이란 단어와 라이언의 보기 드문 격렬한 정사 신을 홍보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엄밀하게 얘기하면 이 영화는 강렬한 러브 스토리, 곧 로맨틱 스릴러다.

뉴욕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속어 사전집을 내기 위해 각종 비어(卑語)들을 수집하고 다니는 주인공 프래니는 어느 날 뒷골목의 한 바에서 오럴 섹스를 하고 있는 남녀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후 여자가 목이 잘린 채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프래니를 찾아 온 살인사건의 담당형사 말로이는 알고 보니 살해 현장에서 오럴 섹스를 즐기던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래니는 말로이의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에 빠지게 된다.

라이언은 이번 영화를 통해 스스로가 유포시킨 신데렐라 신드롬을 깨고 나오는데 성공했다. ‘해리…’에서 오르가슴을 흉내 냈던 만인의 ‘어린 연인’이 어느덧 억누르지 못하는 성적 욕망과 환희에 몸을 떠는 여인이 됐다. 라이언이 섹스를 한다고? 야릇한 광경이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모습이 진짜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3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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