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를 주름잡던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경제적 풍요를 밑바탕으로 전 세계 패권을 장악했던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를 상징했다. 스탤론과 슈워제네거는 철저하게 시대배경이 인기의 발판이 된 배우들이며 실제로 슈워제네거는 그 후광을 이어나가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까지 올랐다.
할리우드 액션스타의 계보를 잇는 빈 디젤 역시 2000년대의 세상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콘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 영화 속에서의 디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미쳐 사는, 예를 들어 익스트림 스포츠광(狂) 같은 인물로 비친다. ‘분노의 질주’에서는 스트리트 자동차 경주를 이끄는 폭주족 대장으로, ‘트리플 X’에서는 무정부주의적이고 반항적인 아웃사이더로 나온다. 젊은 층 관객이 열광했던 것은 바로 파워 넘치는 반항아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남들이 무어라 하든, 그게 의미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나 좋으면 한다는 식의 태도, 고공낙하 같은 스포츠에 목숨을 거는 그 무모함이다. 그리고 세계의 젊은이들은 디젤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뒤통수에 X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디젤의 열풍이 시작된 것이며 그 인기는 그를 개런티 1000만 달러 배우의 대열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의 반항은 다소 ‘사이비성’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청춘들의 반항조차 상품으로 만들어 주류사회로 끌어들이는 법이다. 사실 ‘트리플 X’에서 아웃사이더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최정예의 첩보요원이 된다는 설정은 아예 웃기지조차 않는다. 영화 속에서 디젤이 연기한 영웅은 정부가 요구하는 일을 하기 싫은 척, 억지로 하는 척하지만 결국엔 미국 만세를 부른다. 그 가증스러움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SF마니아들은 그의 진짜 매력을 2000년 출연작 ‘에일리언 2002’에서 찾는다. 데이빗 트오히 감독이 만들었던 2000만 달러짜리, 이 저예산 SF영화는 공상과학적 요소보다는 독특한 호러의 분위기가 좀더 강조돼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시나리오도 엉성하고 캐릭터는 더욱 불분명한 기괴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식으로 볼 때 워낙 저예산이었던 탓에 영화는 제작비의 두 배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성과를 얻었다. 여기에 힘입어 아예 대규모 블록버스터 버전으로 키운 것이 이번 신작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이다. 그러니까 ‘에일리언 2002’의 속편인 셈이다.
1억4000만 달러짜리 대작인 만큼 영화의 외양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졌다. 무엇보다 컴퓨터그래픽에 아낌없이 투자를 해 SF영화로서의 볼거리는 이전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졌다.
인물이나 설정도 전작에 비해 훨씬 세련됐는데 주인공 리딕은 헬리온 행성을 악의 무리인 네크로몬거로부터 지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퓨리언족의 유일한 생존자로 나온다. 솔직히 말하면 헬리온이니 네크로몬거니 하는 만화 같은 이름들을 외우거나 혹은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무슨 얘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따질 일도 아니다. 그저 이런 영화는 35도가 넘는 복더위를 시원하게 잊게 해주면 그만이다.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는 추울 때보다는 더울 때 많이 나온다. 적어도 그의 파워풀 액션은 더운 여름 한때를 잊게 해주는 데만큼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1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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