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놀라운 점이 A급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만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영화라면 할리우드엔 얼마든지 있다. 이 영화의 진짜 놀라운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중 배경이 실사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귀네스 팰트로 같은 ‘비싼’ 배우들이 모두 블루마트(blue mart) 앞에서 있지도 않은 배경을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가며 연기를 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재밌는 점이다. 영화의 배경은 나중에 감독인 케리 콘란 혼자서 끙끙대며 다 만들었다라고 하면 좀 심한 과장이고,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와 100여 명의 CG 스태프, 무엇보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2 오딧세이’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대형 콤퓨터 ‘할’이 만들어 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든다. 케리 콘란이라는 여자, 왜 이런 일을 벌이려 했을까? 이건 도로(徒勞)이자 만용이 아닐까?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05 세계 대전망’에 따른 분석대로 이제는 정말 디지털 시대로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것이 흔히들 얘기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따른 새로운 영화미학이라면 솔직히 조금은 끔찍해진다.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건,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에겐 소름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바꿔야 할 것은 영화산업의 프로세스이지 미학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미덕이자 유의미한 점은 극중 배경을 몽땅 다 컴퓨터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이 높아졌다는 것과 작가의 창작력을 배가시킨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는 역설에 있다.
오히려 이 영화의 특이한 점, 그래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야기의 시대배경을 과거와 미래로 믹싱했다는 점이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독창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이야기는 1930년대 말,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미래 로봇시대의 이야기다. 이건 마치 일본 데스카 오사무 원작의 애니메이션 ‘메트로폴리스’를 1940년대 할리우드의 필름 누아르 판으로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는 오시이 마모루가 감독한 희대의 CG영화 ‘아발론’을 의도적으로 거칠게 만든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야기를 만들면서 케리 콘란은 마치 자신이 1930년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 시대의 관점에서 미래세계를 그려내려 했다. 2004년이나 2005년에 생각하는 미래와 1930년대에 생각하는 미래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의 의식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케리 콘란은 왜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꿈꾸려 했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과거를 지향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지향하는 것인가.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사람들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던져준다.
이 영화는 보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즐기는 작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날로그 감성의 관객과 디지털라이징 문화에 익숙한 관객들 간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릴 것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이 영화가 당신의 좌표를 결정해 줄 것이다. 13일 개봉.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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