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기자의 酒변잡기]술이 생산성을 낮춘다고?

  • 입력 2004년 10월 7일 1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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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한 경제연구소가 한국의 음주 문화를 다룬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다음날 ‘부어라 마셔라, 연 14.5조원’, ‘한국 직장인 4명 중 1명 알코올 중독 초기’ 등 충격적인 제목으로 소개됐다. 한국의 음주 문화가 그리 심각한가.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1. 직장인의 80% 이상이 주 1회 이상 술을 마신다→주 1회가 50.6%, 2, 3회는 29.0%, 4회 이상은 3.4%였다. 다시 말해 67.6%는 술을 아예 안 마시거나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이다.

2. 4명 중 1명은 술자리 10회 중에서 3회 이상 ‘과음’한다→4명 중 1명(24.1%)은 ‘전혀 과음하지 않는다’, 나머지(51.1%)는 ‘10번 중 한두 번만 과음한다’.

3. 술 마신 후 속쓰림과 설사 등 음주 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60%에 이른다→나머지 40%는 술 마셔도 속도 안 쓰리고 설사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응답도 71.1%.

4. 한국의 1인당 연간 음주량은 8.9L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7위다. 90년보다 6계단 상승했다→모든 국가 중에서가 아니다. 30개 선진국 가운데 17위. 여전히 중간 이하다. OECD 국가의 평균 음주량은 9.5L다.

음주와 생산성 손실을 연결시키는 논의가 등장한 건 산업화 이후다. 농번기에 논두렁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서구에선 19세기까지 급료에 술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 계급에 술은 노동을 위한 에너지 공급원이었다. 근무 시간 중 음주도 흔했다는데 ‘알코올 브레이크’는 질서와 통제라는 단어가 거대 직장 공동체에 확산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팍팍한 경제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보고서는 오히려 거꾸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술을 안 마시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훨씬 더 많지만 놀라운 자제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참고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10년간 1인당 음주량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아일랜드다. 흥미로운 건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국가도 아일랜드라는 점이다. 1980년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기적을 일궈낸 아일랜드는 한국 경제의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힌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6000달러로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2위.

음주와 생산성, 참으로 알 수 없는 관계 아닌가.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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