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집요한 억지주장에만 분노하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북방의 변경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본보 특별취재팀은 백두산과 천지, 압록강과 두만강, 간도와 연해주 등을 돌아보면서 영토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임을 절감했다. 1909년 아무 권한도 없는 일제가 이권의 대가로 중국에 간도를 넘겨버린 간도협약에 가슴을 쳐야 했다.
백두산과 천지를 양분한 북-중 밀약의 정확한 진상을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웠고, 간도 영유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대응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초조감도 들었다. 더 이상 외면하고 방치하면 영원한 ‘민족의 실지(失地)’가 될지도 모르는 영토분쟁의 현장을 소개한다.》
<1> 철책 하나 없는 北-中 국경
‘도화선(圖和線) 200km’라는 도로표지를 지나쳤다. 도로의 기점인 두만강 하구의 북-중(北-中)간 국경도시, 투먼(圖們)에서의 거리다. 차가 달리는 곳은 백두산의 해발 1300m 지점, 행정구역상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다. 표지석을 지나 겨우 5분을 달렸을까. ‘두만강 발원지’라고 한글과 한자로 병기된 말끔한 교통표지가 우뚝 길 왼편에 나타난다. 차를 멈추고 표지가 가리키는 도로 안쪽 숲을 향해 들어서다가 붉은색 페인트로 쓴 ‘월경(越境)관광 금지’ 경고문에 순간 발길이 주춤해진다.
○ 한 발은 북한, 한 발은 중국
“자칫하면 조선(북한)군이나 중국군에게 붙잡힌다”며 연방 주위를 살피는 길잡이의 긴장된 목소리와는 달리 사방 어디에도 국경을 나타내 주는 철책 하나 보이지 않는다.
길 안쪽으로 200여m를 걸어 들어갔다. 표지가 없었다면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작은 웅덩이에 불과한 두만강 발원지가 나타난다. 거기서 시작된 물의 흐름을 찾기 위해 동쪽으로 100여m를 걸어가자 폭이 채 1m도 되지 않는 도랑 같은 물줄기가 보인다.
다리를 벌려 도랑의 이쪽과 저쪽을 밟고 섰다.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가르는 국경하천. 그러니 지금 취재기자의 한쪽 발은 중국, 또 다른 한쪽은 북한을 딛고 선 것이다. 다시 도로로 나가기 위해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 100여m쯤을 걸어나간 지점, 도로 안쪽으로 들어선 오른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비석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석의 북쪽 면 글씨가 뚜렷이 보였다.
○ 백두산의 마지막 국계비
‘中國 21(2) 1990.’ 비석의 남쪽 면에는 똑같은 글씨체로 ‘조선 21(2) 1990’이 붉은색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약 1m. 어른 허리께에 차는 높이다. 북한과 중국 어느 쪽도 국경선을 언제 어떻게 획정했는지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지만 백두산을 가르는 표석으로 1960년대 이후 엄연히 실재해 온 국경 경계비(국계비)들. 21번 비석은 마지막 국계비였다.
백두산 일대의 국계비는 북-중간 국경의 ‘실체적 증거’다. 변화가 있었다면 1962년에 세워진 국계비가 1990년에 현재의 화강암 소재로 바뀌었다는 것뿐. 백두산 지역의 주민들은 이 국계비와 함께 40여년을 살아왔다. 이들 국계비는 요즘 밀수꾼들의 접선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중국 안투(安圖)현에 사는 조선족 청년 A씨의 얘기.
“요즘은 차 밀수를 많이 하는데 옌볜에 굴러다니는 한국제 고급차들 다 북한땅 거쳐서 들어온 겁니다. 저쪽(북한)에서 ‘오늘밤 차 한대 간다’며 ‘17호 쪽으로 간다, 19호 쪽으로 간다’고 하면 금방 그쪽으로 차 한 대 다닐 길을 닦았다가 차만 지나가면 국경부대가 못 보게 싹 흔적을 치워 버린단 말입니다.”
○천지를 가르는 두개의 비석
“백두산의 서쪽 등반코스에 5월이면 꽃이 활짝 피는데 ‘꽃축제’라고 아주 장관입니다. 서쪽 코스, 여기 말로 ‘시포(西破)’의 시작점이 5호 국계비죠.” 현지 등반가이드 B씨는 등산 가이드들에게도 국경비는 중요 지형지물이라고 전한다.
5호비는 천지 서쪽의 봉우리인 청석봉(2664m) 남쪽에 세워져 있다. 이 5호비와 동북쪽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지점에 6호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5호비와 6호비를 잇는 직선이 중국측 지도에 표시된 천지를 분할하는 국경선이다.
1∼4호 국계비를 보려면 백두산 남쪽 코스를 택해야 한다. 행정구역상 중국은 창바이(長白)현, 조선은 양강도 혜산시가 마주보는 지역이다. 1∼4호비는 백두산 관면봉에서 시작해 서북 방향의 와호봉 제운봉으로 연결되는 코스에 있다. 출발점은 창바이현의 23도구. 계곡 아래로 압록강 상류가 보이는 이 남쪽 등산로는 북한과 중국 양쪽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코스를 올라본 한국인 K씨의 경험담.
“중국 사람들은 통행증을 받은 뒤 국경경비대의 안내를 받으면서 차를 타고 올라가요. 저는 아예 미화 100달러짜리를 준비해 갖고 가서 북한 국경경비대와 부닥칠 때마다 찔러줬어요.”
○중국의 묘한 2중 정책
21호비가 세워진 곳은 북한 쪽의 홍토수와 중국 쪽의 뤄류허(弱流河)가 만나는 지점. 20호비 또한 홍토수와 중국 쪽 무수린허(母樹林河)의 합수지점에 설치됐다. 지난해 21호비 앞쪽에 군사도로가 뚫리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옌볜대학출판사에서 2002년 발간한 ‘연변관광자원과 리용(이용)’이라는 책에서는 책자는 21호비를 관광자원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21호비로 통하는 길은 중국인들조차 통행을 하려면 국경경비대에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행 목적을 밝혀야 하는 군사도로다. 중국은 지난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린(吉林)성과 랴오닝(遼寧)성 국경지역에 15만명의 군을 추가투입했다.
백두산 등반 북쪽 코스의 관문인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의 주민 C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 출신 변방 경찰들이 국경을 지켰는데 요즘은 허베이(河北) 쓰촨(四川)성 등 내지에서 온 군인들로 싹 바뀌었고 경비도 강화됐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을 막고 북한 정권에 변고가 생기면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짐작이다.
허룽(和龍)시 주민 D씨는 조금 다른 설명을 보탰다. “국계비에 가까이 가거나 사진촬영을 하는 것은 여전히 위법이지만 요즘은 시 재원 확보를 위해 두만강 발원지나 만주족 발상지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위안츠(圓池)’ ‘댜오위타이(釣魚臺·일명 김일성 낚시터)’ 등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경 경비 강화와 관광 홍보는 모순이다. 중국의 진짜 속내는 뭘까. 2002년 2월부터 중국사회과학원이 주도하는 학술프로젝트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민의 반중(反中)감정 격화를 예상하면서도 국가 주도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엔 한반도 통일 이후까지 대비하는 장기적이고 거대한 국가전략이 숨어있는 듯해서다.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논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사회과학원 홈페이지(www.chinaborderland.com)가 동북공정의 목표를 ‘동북변경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 것부터 학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근 10년 내 동북아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역이 되었고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 북조선 한국 몽골 일본 미국 등의 국가와 중국이 갖는 쌍방관계 다자관계는 매우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부단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고 밝힌 대목은 중국의 의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2002년 동북공정 개시와 지난해 동북변경지역 군사력 증강에는 분명 상관관계가 있다. 말없이 서 있는 국계비와 우뚝 선 백두산,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동북아에 암운을 드리울 가능성이 있다. 영토분쟁은 우리에게도 그리 먼 얘기가 아닌 것이다.
▼中, 천지에서 ‘국경 이벤트’▼
2001년 8월 28일. 천지에 최초로 금이 그어졌다. ‘중국의 물개’로 불리는 장젠(張健·40) 베이징(北京)체육대 교수가 천지를 헤엄쳐 횡단했다. 장 교수는 천지 동서쪽의 국경경계비(5호비와 6호비)를 잇는 선과 200m 간격의 평행선을 그리며 물을 갈랐다. 물론 중국 쪽에서 수영을 했다.
이는 천지에 국경선이 있음을 보여주려 한 의도적인 이벤트가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중국 언론들은 행사 전날까지 이 이벤트에 관해 일절 언?僿舊?않았으나 행사 당일엔 일제히 ‘천지 횡단’을 부각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북한은 중국에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두산 창바이(長白)폭포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작년에도 한 중국인 사업가가 천지의 중국 쪽 절반만 운항하는 관광유람선을 띄우려 했다가 북한의 거센 항의를 받고 철회한 일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중국지도출판사에서 제작한 지린(吉林)성 지도는 천지 한복판에 국경선을 그어놓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은 천지를 약 6 대 4의 비율로 나눠 갖고 있다. 그러나 1997년 북한 교육도서출판사가 펴낸 조선지도첩엔 국경선이 천지의 동서 양끝까지만 그려져 있다.
북한이 천지에 국경선을 표시하지 않은 것은 백두산은 부득이하게 중국과 나눠 가졌어도 천지만은 온전히 조선의 것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한국지도는 이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북한행정도’(성지문화사) ‘최신북한지도’(우보지도문화사) ‘대한민국전도’(새한지도) 모두 천지를 통째로 북한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천지에 사는 물고기들의 ‘국적’은 확실히 북한이다. 천지에는 원래 어류가 살지 않았으나 북한 조선과학원의 동물연구소 어류학자들이 60년 84년 89년 91년에 각각 5, 100, 120, 216마리의 물고기를 방류했다. 그래서 세계 화산호 중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천지에 붕어 산천어 등이 살게 됐다.
중국은 백두산을 AAAA급 관광구로, 북한은 백두산과 천지를 각각 명승지 제19호와 제351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백두산=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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