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대담]<7>‘스크린 쿼터’한국영화 보루인가

  • 입력 2004년 6월 20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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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극장가에 몰려든 관객들. 최근 ‘현행 스크린쿼터제 고수’에서 태도를 바꾼 문화관광부의 정책 변화가 또 다시 영화계의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극장가에 몰려든 관객들. 최근 ‘현행 스크린쿼터제 고수’에서 태도를 바꾼 문화관광부의 정책 변화가 또 다시 영화계의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문화관광부의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제) 축소 검토 방침을 계기로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2일 스크린쿼터 사수결의대회를 통해 전면적이면서도 강도 높은 투쟁 방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정부 내에서는 스크린쿼터 축소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지만 대책위가 정치권과의 연대 투쟁도 모색하고 있어 사회적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스크린쿼터(146일·각종 경감조치 통해 사실상 106일)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48)씨와 이 제도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조희문(상명대 예술대학장·47)씨가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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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현=스크린쿼터의 당위성은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의 산업적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한국 영화는 평균 제작비 40억원에 연간 60편 정도 제작된다. 반면 할리우드 영화는 제작비 400억원 이상에 연간 600여 편이다. 쿼터는 이런 불균형으로 인한 독점을 방지하고 자유경쟁을 허용하려는 공정거래 장치다.

▽조희문=영화의 경쟁력을 작품의 크기로 얘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제작비를 많이 들인 영화가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할리우드 영화가 모든 나라에서 흥행의 우위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 영화가 미국의 10분의 1, 100분의 1의 제작비로도 흥행에서 앞서고 있지 않나.

▽심=미국 영화는 개방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개방하면서 쿼터를 가진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절대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85%라는 사실을 왜 간과하는가.

▽조=과거에는 자본 기술 인력 유통 등 여러 펀더멘털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상당한 수준까지 갖춰져 있다. 한국 영화의 자생력은 안정 단계에 들어가 있다.

▽심=모든 게 갖춰진 안정단계가 아니라 발전 개시 단계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미국 영화에 맞서기 시작했다는 자부심을 산업적 안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한국 영화 점유율은 50%대에 이르렀지만 수익률은 ―19.5%였다.

▽조=각국의 영화시장 동향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스크린쿼터를 지키자고 하면 한국 영화를 보호하자는 것이고,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스크린쿼터가 한국 영화의 보호에 기여했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 영화가 성장했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다.

▽심=지난 10년간 극장의 스크린쿼터 위반 일수 감소 비율과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 상승 비율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쿼터가 경쟁력의 장애요인이라는 억지 주장을 입증하는 강력한 사실이다. 왜 이를 무시하고 다른 요인만 강조하려고 하는가.

▽조=스크린쿼터에서 보호하자는 내용물이 뭐냐. 쿼터로 인해 보호하지 않아도 될 영화가 보호되고, 예술영화나 작은 영화 등 정작 보호받아야 할 영화들이 방치됐다. 무조건 쿼터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맞춤형 지원’ 형태로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발언은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 같다.

▽심=영화의 다양성을 증진하려면 현재 쿼터 정책 이외에 작은 영화를 위한 ‘마이너리티 쿼터’가 새롭게 필요하다. 이 장관의 ‘연동제’ 발언의 취지는 쿼터 축소가 초점이 아니라 ‘메이저 쿼터+마이너 쿼터’의 균형에 있는데 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조=정책적 취약점을 다시 정책으로 메우려는 개악(改惡)적 발상이다. 점유율이 50%를 웃도는 상황에서 쿼터 사수라는 입장이 대중적으로 지지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연차적으로 조금씩 줄이다 폐지하는 ‘일몰제’(日沒制) 방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쿼터의 축소는 명백하게 대선공약 위반이다. 일몰제는 할리우드 영화가 없는 한국영화 내부만의 문제라면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공상적 가정이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현행 106일 내에 마이너 쿼터를 도입해야 한다. 외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나머지 기간에 또 다른 마이너 쿼터의 도입이 필요하다.

▽조=스크린쿼터에서 자유로워지자. 상업적인 주류 영화는 시장기능에 의해 움직이도록 두자.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문제다. 현재 드라마 영화 패션 음악 등 한국 문화상품이 아시아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심=자신감은 오히려 넘치고 있다. 다만 무지막지한 미국식 패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문화산업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문화와 산업의 결합이다. 멀티플렉스는 돈 버는 곳이지만 동시에 화랑처럼 공공적인 문화시설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1주일 의무상영고지제’와 같이 ‘와이드 릴리스’의 병폐를 개선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조=프랑스식 영화진흥제도의 취약점은 지나치게 정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내부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제도가 부분적으로 필요하지만 큰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관객과 시장에 맡겨야 한다.

▽심=관객과 시장은 당연히 중요하다. 문제는 정부와 기업의 투자인데, 정보기술(IT)와 생명기술(BT) 산업 등에는 정부 투자를 강조하면서 미래의 주역인 문화산업은 시장에만 맡기자는 것인가. 더 이상 국민을 혼동하게 하지 말고 경제학자들과 함께 결론이 날 때까지 ‘끝장 토론’을 벌이자.

대담결과

영화계의 대표적 논객인 두 사람의 대담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물론 스크린쿼터의 미래까지 주제마다 거의 접점이 없었다. ‘작은’ 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데는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역시 처방은 달랐다. 가장 큰 수확은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집중적인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리=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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