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대담]<8>‘정치패러디’ 어디까지 허용되나

  • 입력 2004년 6월 27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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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후보 때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밝힌 TV 연설 동영상과 동요 ‘올챙이와 개구리’가 합성된 1분 길이의 패러디를 게재했다. 이 동영상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 KBS는 저작권법 위반이라며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4·15 총선때 패러디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KBS가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서 정치 패러디가 일상화함에 따라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또는 인격권)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4·15 총선 때는 특정 정치인을 소재로 한 패러디를 인터넷에 유포시킨 이가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면 정치 패러디는 어느 수위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문재완 단국대 법학과 교수(43)와 방석호 홍익대 법학과 교수(47)가 이에 대해 토론했다. 문 교수는 표현의 자유, 방 교수는 저작권과 인격권 보호의 입장에서 각각 토론을 벌였다.》

▽방석호=KBS가 야당 의원을 소재로 한 패러디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노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가 나오니까 저작권법 위반을 내세우고 있다. KBS의 일관성없는 태도는 문제이지만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맞다. 그 패러디는 가공의 수준이 낮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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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완=패러디의 수준을 기준으로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만 법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수준낮은 패러디는 시장에서 걸러질 것이다.

▽방=법이 기술 발달의 속도를 못 따라간다며 사이버 상에서만 보호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은 법적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문=인터넷 공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패러디의 내용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보호하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치적 표현은 보호받아야 한다.

▽방=정치적이라는 말은 불확정 개념이므로 한계를 지을 필요가 있다. 특히 패러디를 구분해야 한다. 직접적 패러디와 간접적 패러디가 있는데, 직접적 패러디는 완성도가 높아 2차 저작물이 아니라 별개의 창작물로 여겨지며 현행법상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는다. 문제는 원작을 살짝 빌려와 변형을 주는, 창작성이 떨어지는 간접적 패러디다. 이는 원작자의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문=패러디를 만평과 비교해보자. 둘 다 풍자라는 영역 안에서 그림이나 컴퓨터 합성을 수단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의사 표현이라는 목적은 같고 수단이 다를 뿐인데 만평은 법적 보호를 받고 패러디는 그렇지 못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방=풍자 만화는 독창성이 확실하게 발휘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는 것이다. 독창성의 수준은 객관화하기 어렵지만 상대적 평가는 가능하다.


▽문=패러디는 저작권법 제25조의 ‘비평을 위한 인용’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보도 비평 교육 연구를 위해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으므로 정치 패러디가 비평을 목적으로 원작물을 인용하더라도 저작권의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방=그러나 저작권법상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이란 정치적 비판이 아니라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비평을 말한다.

▽문=비평을 문학에만 한정할 수 있는가. 비평을 위한 인용이 학자나 기자에게 허용되듯 일반에게도 허용돼야 하지 않을까.

▽방=패러디에 의한 명예훼손 등 인격권 침해와 실정법 위반도 패러디의 보호 한계를 따지기 위해 짚어봐야 한다.

▽문=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명예훼손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으면 의견 표명이라고 보아 보호하고 있다. 패러디는 대부분 의견 표명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거나 암시하더라도 조롱의 대상이 공직자라면 그 패러디는 정치적 표현으로 간주해 보호돼야 한다.

▽방=대법원의 기본 입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얻는 사회적 이익과 이로 인한 개인의 피해를 비교해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의 적시없이도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표현의 자유에 한계를 지을 수 있다. 공인(公人) 이론도 문제다. 인터넷 매체는 모든 사람을 공인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문=공인의 개념을 확대하는 데는 반대한다. 하지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의 공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방=대법원 판례가 표현의 자유와 명예권의 충돌에서 언론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피고는 언론사들이다. 언론사들은 진실과 거짓에 대해 판단할 책임과 능력이 있어 신뢰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 패러디는 보도된 사진이나 포스터를 이용해 개인이 의사 주체로 등장한다. 언론사와 개인은 위법성 기준이 달라야 한다.

▽문=정치 패러디라고 언제나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선거법과 관련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허위의 사실을 담고 있는 패러디를 시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방=정치 패러디는 허위 사실 전달이 아니라 잘못된 이미지를 굳히는 게 목적이다. 따라서 허위 사실을 담고 있지 않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너그럽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문 교수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정치 패러디의 경우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해석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방 교수는 패러디의 완성도를 따져 저급한 패러디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시간 반 동안 토론에서 두 교수의 견해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 기간중의 정치 패러디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정리〓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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