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외치는 주문-》
‘해리 포터’ 시리즈엔 따라 해보고 싶은 주문이 참 많다. 잠긴 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는 ‘알로호모라’, 먼 곳의 물 잔이 내 앞에 미끄러져 오도록 마법을 거는 ‘아씨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봤자 ‘머글’(마법사가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으른 몽상을 털고 뒤죽박죽인 가방을 뒤져 열쇠를 찾거나 물 잔을 가지러 일어나는 수밖에 없지만.
영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DVD·워너 브러더스)에서 해리가 온 힘을 다해 외치던 ‘익스펙토 패트로눔’은 가장 강력한 마법사들만이 할 수 있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주문이다.
‘익스펙토(Expecto)’는 라틴어로 ‘기다린다’, ‘패트로눔 (Patronum)’은 ‘대부, 보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패트로누스를 부르는 주문은 나를 보호해 줄 막강한 힘을 불러오는 마법인데, 이 주문을 쓰는 요령은 되레 단순하다. 과거로 돌아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그런 다음, 그 기억에 온 마음을 집중하며 주문을 외치면 된다. 이걸 최고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만 쓸 수 있다는 말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찾아내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뜻일까.
타고난 천재 마법사 해리도 첫 시도에서 이 주문을 쓰는 데 실패했다. 해리가 떠올린 행복한 기억은 ‘처음 빗자루를 타던 날’이었는데 패트로누스를 불러내기엔 시시했던 탓이다. 해리는 ‘완전히 행복하지는 않고 좀 복잡하지만 강렬한 다른 기억’, 즉 자신에게 천형과도 같은 재능을 남겨준 뒤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주문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 그도, 영혼을 빨아먹는 아즈카반의 간수들인 디멘터가 떼로 달려드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위기에 처한 해리가 디멘터에게 영혼을 빨려 먹히기 직전, 누군가 패트로누스 마법을 이용해 해리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다.
해리는 그 구원자가 아버지의 영혼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방문해본 뒤 그 초강력 마법사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은빛 광선을 내뿜는 유령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한 패트로누스의 이미지는 다름 아닌 해리 포터 자신의 강렬하고 행복했던 기억, 그것에 기반한 자신의 긍정적인 의지가 구현된 것에 다름 아니다.
시리즈의 3편인 이 영화에서 해리는 자주 배신당하고 사악한 기운까지 살짝 드러내지만 결국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그 자신, 어리석음과 악한 면모, 그와 동시에 빛나는 부분을 갖고 있는 그 자신만이 스스로를 구원했던 것이다.
우리도 각자의 과거로 돌아가 보면 해리처럼 강렬하고도 행복한 기억을 찾을 수 있게 될까. 과거의 기억들이 앨범처럼 앞에 펼쳐져 있더라도 패트로누스를 불러내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단 한 장의 사진도 찾아내지 못할지 모른다. 행복한 기억, 나를 보호해 줄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의지 그 자체다. 그런 면에서 ‘익스펙토 패트로눔’은 의지의 선언과도 같다.
해리보다 앞선 시대, 해리만큼 외톨이였던 제인 에어도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사랑을 뿌리치고 떠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기댈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존경한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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