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구 해외소개 빈약=고구려사를 포함해 한국 고대사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해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백 선생의 저서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출간된 것이 고작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아시아학회에서 고구려사에 관해서는 고분벽화 등이 미술사 차원에서 다뤄지는 정도다. 일본 학회에서는 광개토대왕비 연구 정도가 관심 있는 주제다.
국내에서 영문으로 정기 발간되는 한국학 관련 잡지로는 정신문화연구원의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학연구소가 발간하는 ‘Korean Studies’ 등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학술진흥재단이 몇 년 전부터 국내 학술지에 게재되는 한국사 관련 논문에 영문 초록(抄錄)을 첨부하도록 하고 있는 것도 이같이 한국사 관련 서적이나 연구결과의 영문 소개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의 해외 주요 학회 참여 빈도도 낮다. 무엇보다 언어구사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반면 일본은 저팬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을 통해 일본 내에서 이뤄진 최신 연구를 지속적으로 미국과 유럽학계에 소개해오고 있다. 또 미국 내 중국학 전공학자들은 중국계가 많은데 이들은 학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중국 본토에서 이뤄지는 연구 성과를 곧바로 미국에 알린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나 유럽의 아시아사 연구자가 한국사에 접하는 경로는 대부분 중국사나 일본사를 통해서다. 미국 유럽의 학자나 학생들이 중국측의 논리가 반영된 고구려사를 연구하거나 배울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학 연구 해외에 알리는 중장기적 전담기구 절실=국내 학자들은 지금이야말로 고구려사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사, 더 나아가서는 한국학 전반을 장기적 안목으로 해외에 소개할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울산대 전호태 교수(역사문화학)는 “고구려연구재단으로는 연구규모도 인력도 부족하다. 10∼20년 뒤에 지금의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는 정부의 공식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 한인학자들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지난달 말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赤峰)시에서 열린 고대북방문화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임효재 서울대 교수는 “중국 내 조선족 학자들이 마음으로는 한국을 돕는 연구를 하고 싶지만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중국측 눈치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래로부터의 노력=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당시 서독)은 과거 자신의 식민지배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던 폴란드와 화해 차원에서 오랜 협의를 거쳐 양국의 역사 및 지리 교과서를 성공적으로 수정했다.
독일, 폴란드와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지만 한국의 시민단체인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교육연대)’도 중국 일본의 단체들과 협의해 공동 역사 부교재 발간을 앞두고 있다.
올해 말 발간예정인 이 역사 부교재는 주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해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교육연대측은 2005년 중국 교과서 개정시 왜곡된 내용이 실릴 것에 대비해 중국 교과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교육연대의 박장일 중국교과서 특위 위원장은 “기존의 한중일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측 입장을 확인하고 개선할 부분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대만도 이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간 부문에서 한국사를 해외에 올바로 알리는 데는 사이버 민간외교사절단 ‘반크(VANK)’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펜팔활동을 통해 해외 각국의 인터넷 사이트나 교과서 등에 소개된 한국사의 오류를 줄기차게 지적해온 반크는 현재 1만3800여명의 회원들이 왜곡된 고구려사를 바로잡는 데 힘쓰고 있다.
반크의 박기태 단장은 “중국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려면 한국이 아니라 세계의 압력이 필요하다”며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서도 올바른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친숙하게 만든다면 10여년 뒤에는 이들이 커다란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