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과목에서 언어나 수학을 제외시킨 대학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고3 교실의 이과생들은 언어나 사회를 꺼리고 문과생들은 수학이나 과학을 기피한다.
문제는 대학에서도 이런 현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의 이과생들은 문학이나 역사, 철학을 등한시하고 문과생들은 수학과 과학에 문외한이다. 과학과 기술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이를 이해할 논리와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세상을 바라볼 나름대로의 뿌리와 정신을 갖추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용’과 그것이 가져다 줄 ‘부(富)’만이 관심과 미덕의 대상인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좁고 치우친 우리들의 사고를 넓혀 줄 훌륭한 본보기로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는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교통 등 전혀 별개의 분야로 생각되는 사회 현상들이 사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브라질 땅콩 효과’를 생각해 보자. 여러 종류의 땅콩을 섞어 놓은 깡통을 열 때 가장 큰 브라질 땅콩은 항상 맨 위로 올라온다. 깡통을 흔들수록 알갱이 크기별로 층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고체나 액체에서는 볼 수 없는 이같이 독특한 현상으로 인해 연간 66조 원에 이르는 가욋돈을 써 온 관련 기업들은 모래알갱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그 결과 알갱이들만의 고유한 이 특성은 현재 산사태를 알려 줄 지표는 물론 우주 성운의 형성 과정을 알려 줄 열쇠가 되고 있다.
알갱이 역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소한 현상과 우주 질서가 이어져 있고 그 속에는 놀랄 만한 과학 질서와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로처럼 설계된 백화점에는 ‘쇼핑의 과학’이 숨어 있고, ‘내 차선이 다른 차선보다 느린’ 머피의 법칙에는 착시현상과 심리적 요인이 자리한다. 또 생물학적 본능으로만 여겨지던 웃음 속에는 독특한 의미와 기능을 가진 사회학의 문제가 배어 있다.
로켓 물리학자들이 모형화한 주가지수처럼 인간의 역사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도 복잡하고 카오스적이다. 그것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도 아니지만 통계와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연만의 세계도 아니다. 정확한 예측이 어렵기는 해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카오스다. 다만 복잡한 세상을 설명할 명쾌한 과학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 능력에서 온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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