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한국인의 정신적 모유다.
역사와 문학, 종교와 민속이 산골짝 주름처럼 얽혀 있는 한민족의 성장 보고서다. 그러나 훈련된 독해 능력 없이 삼국유사를 정확히 읽어 내기란 매우 까다롭다. 역사적 사실과 설화 속 상징을 갈라내어 맥락을 이해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선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단군신화가 실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삼국유사가 받아온 특별대접은 단군신화를 실은 탓이 크다. 해설자는 13세기 사람인 일연에게 민족 주체성에 대한 각성이 있었음을 읽게 해 준다. 대내적으로는 무신정권이, 대외적으로는 원(元)의 건국이 중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게 된 배경이다. 저자인 일연의 의도를 아는 것, 그리고 시대 배경 속에서 텍스트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 이 책이 보여 주는 텍스트 읽기의 핵심이다.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는 법도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역할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환웅에게 직접 찾아가 사람 되는 방법을 구하고, 그 후 아이 낳기를 청한 쪽은 웅녀이다. 단군신화 속에 숨은 주도권은 어쩌면 웅녀의 전략에 있었을 법하다. 새로운 각도로 독해하는 것은 주체적 책읽기의 지름길이다.
‘이름 짓기’를 통해 핵심을 드러내는 방법도 참신하다. ‘한반도판 전국시대.’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무려 70여 개의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에 해설자가 붙인 명칭이다. 낙산사의 설화에서 의상과 진신의 만남은 ‘치밀하고 정성스러운 만남’으로, 원효와 진신의 만남은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으로 이름 붙여 필연과 우연을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일연의 문체와 시들은 논술문을 작성할 때 문학적 표현의 활용법을 배우게 한다. 비록 설화와 섞여 있는 역사서이지만, 역사 기록에 덧붙인 시와 향가들은 본문의 핵심을 압축하고 행간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더불어 해설자의 꼼꼼한 논리적 검증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차돈의 흰 피, 나라를 구한 만파식적, 견훤의 지렁이 설화 등 사실로 믿기 어려운 사건들에 파고들어 집요하게 ‘근거’를 추적한다. 객관적 사실과 상징적 의미를 구별하는 일은 논리적 책 읽기에서 빠지지 않는 요건이다.
바야흐로 수시 모집 2학기 시험이 한창인 요즘이다. 논술 구술을 막론하고 주어진 제시문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독창적인 주장을 전개해야 한다. 훌륭한 모범에서 좋은 견본이 나온다. 학생들이 이 책의 매력적인 분석 방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 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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