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이영표 선수에 이어 하인스 워드 열풍으로 인터넷이 뜨겁다. 단일민족이라는 믿음 덕에 그들의 값진 성취는 마치 가족의 경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세계 속의 한국’ 못지않게 ‘한국 속의 세계’ 또한 중요하다. 만나서 섞이는 것이 문화의 속성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적 유물 속에 숨어 있는 선조들의 교류 문화를 추적한다. 근대 서양인은 우리를 ‘은둔의 나라’라 불렀지만 이것은 오해다. 오랜 옛날 신석기 빗살무늬 토기나 청동검은 한반도가 세계 문화권의 어엿한 일원임을 말해 준다. 게다가 빗살무늬 토기는 북방 초원문화에서 전수했으나 어떤 것은 시베리아의 것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상승적 역교류 현상으로서 독창적 문화 수용의 중요한 단서다.
문화의 섞임은 마치 탐정의 추리처럼 흥미롭다. 중세 아랍인들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 칭하며 동방의 이상향으로 여겼다고 한다. 아랍인들의 여러 문헌과 지도에는 당시 신라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 양자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신라가 ‘로마 문화의 왕국’이라는 설명도 매우 충격적이다. 신라 유적에서 출토된 로마 유리와 그리스-로마적인 금세공 장신구들, 로마식으로 제작된 토기와 잔들이 강력한 증거물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소재나 제조기법, 색깔과 무늬들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 영향설을 수긍하게 된다.
외래인들의 귀화 사례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깰 만하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은 허황옥이라는 인도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신라의 ‘처용가’나 고려가요 ‘쌍화점’에는 아랍인과 이 땅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 광종 때 과거 제도를 도입한 쌍기도 중국 후주 출신의 귀화인이다. 우리나라 275개의 성씨 중 외래 성씨가 무려 136개(1985년 통계)나 된다. 단일민족의 신화는 핏줄의 순수성이 아니라 외래인을 융합시킨 선조들의 포용력을 보여 준다.
역사는 문제를 설정하고 증거를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역사적 진실은 시대를 헤쳐 나갈 교훈을 준다. 사자가 살지 않는 이 나라에 사자춤이 전승되듯 문화는 외부의 것을 독창적으로 소화할 때 질적 가치를 높여 간다. 학생들은 우리 시대의 문화가 가져야 할 세계성과 정체성을 역사 추론을 통해 깊이 고민해 보길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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