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천편일률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매번 반복되는 대학별 고사의 총평이다. 학생의 답변이 달라지지 않으니 대학의 반응도 같을 수밖에. 대학은 상투적인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을 펴라고 주문한다. 추가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지는 구술은 창의성 요소를 평가하기에 더욱 알맞다.
상상력 부족은 마치 뼈엉성증(골다공증)처럼 사유의 구조물을 허약하게 만든다. 운동선수가 근육을 기르듯 상상의 힘줄을 키워야 한다. 놀이하듯 사유하기. 이 책에서 인류가 경험한 상상의 자취를 즐겁게 따라가 보자.
상상력은 무엇보다 놀이 속에서 꽃핀다. 놀이는 최소 규칙으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한다. 예를 들어 ‘삼행시’는 단어의 원래 뜻을 해체하고 새로운 내용을 담아낸다. ‘그림자놀이’는 어떨까. 간단한 손동작이 온갖 동물로 변신한다. 아이들의 놀이 감각은 의미를 자유롭게 변용하는 초석인 셈이다.
놀이 규칙은 시대의 관념을 드러낸다. 서양인의 체스 규칙은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이다. 그 안에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군사술과 통치술의 의미가 녹아 있다. 카드 속의 ‘조커’는 한 조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이다. 조커 역의 광대는 이성 중심의 근대사회에서 추방되었으면서도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또한 놀이는 세상의 숨은 질서를 읽게 한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해진 ‘애너그램’은 신의 섭리를 감추거나 드러내려는 신학자들의 놀이였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필연 법칙을 설명할 때 주사위 놀이를 떠올렸다. 과학과 예술이 도전해 온 ‘진리 추구’야말로 거대한 ‘숨은그림찾기’ 놀이가 아닐까.
놀이의 예술성은 철학적 사고와도 상통한다. 늘 보던 뻔한 사물에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긴다. 진짜와 가짜를 활용한 그림자놀이는 주마등이나 영화 매체의 원류이기도 하다. 덧없는 그림자. ‘동굴의 비유’(플라톤)와 ‘사바세계’(불교)는 그림자 안에서도 세상을 읽는 철학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귀찮은 페인트칠을 놀이로 바꾼 톰 소여처럼 ‘일’과 ‘놀이’는 의외로 가까이 있다. 코 흘리는 어린아이도 종이를 접으면서 세상을 만들고 자신을 표현한다. 자기 생각을 풍요롭게 다지는 길은 자유로운 놀이에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결론은 분명하다. “잘 놀아야 잘 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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