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논문을 쓰려면 기존 연구 성과를 검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삶과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한다면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말처럼 박물관이라는 시간 창고는 내가 누구인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흔히 박물관 하면 커다란 규모로 우리를 위압하는 박물관만을 떠올린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보고 또 봐도 끝이 없는 곳.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박물관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주변에 어떤 박물관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가 사는 곳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알지 못하고 사는 이와 같다. 이 책이 머나먼 풍경으로 존재하는 박물관을 우리 생활 속으로 옮겨 놓으려는 이유다.
종이 등잔 기와 화장품부터 나무 화석 글씨 민속극까지 주제만큼 설립 취지와 주체도 다채로운 40여 곳의 박물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땅의 수많은 유물은 한편으로 상상력과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고 또 한편으로 그 깊은 뿌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꾸짖는다.
‘걱정 마, 만사 잘될 거야’라고 속삭이는 민화가 있는가 하면 황토 빛과 고동색을 사랑하게 하는 옹기가 있다. 명멸하는 사물들 속에서 오랜 세월을 품어 낸 도자기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려 주고, 빛바랜 책들은 잊힌 옛날과 함께 고운 심성을 되찾아 준다.
선인들이 겪었을 삶의 애환과 고뇌를, 그리고 그들이 품었을 꿈과 희망을 읽는다면 이 모든 유물에 얽힌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마저 예사로울 수 없다. 비록 사물일지라도 한 사람이 온 정신을 바친 것에선 선인들의 숨결과 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읽어 내지 못한다면 하회탈은 나와 무관한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저자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 것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다고 말한다. 조상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를 아는 일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더불어 나 자신과 인생을 바꾸어 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직접 보지 않으면 실감할 수 없는 박물관. 정감 어린 사진, 속 깊은 이야기들과 함께 추억의 곳간을 향해 떠나 보자. 그리고 나와 우리의 혼을 만나는 안목을 길러 보자. 안목은 삶의 질을 바꾼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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