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성찰과 사색의 샘물… ‘반통의 물’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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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통의 물/나희덕 지음/221쪽·7500원·창비

논술의 관건은 논리적 사고력이다. 문제는 생각의 깊이라 할 사고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입시가 요구하는 수준 높은 비판력과 창의력은 산 넘어 산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멀고 어려운 문제로 끙끙대기보다 가깝고 쉬운 일상에서 출발해 문제의식과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책은 기억의 편린들을 통해 잔잔한 깨달음을 건져 올리듯 나날의 일상 속에서 문제의식과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이야기다.

30여 편의 산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사물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길을 일러준다. 탱자나무에는 왜 가시가 있을까? 소박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가시가 자신의 꽃잎을 찌르기도 한다는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그 질문은 우리네 삶을 괴롭히는 인생의 가시로 전이되고 확장되며 새로운 성찰을 낳는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는 로트레크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만든 단점이 우리의 존재를 들어 올리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 책엔 작가의 잊지 못할 순간과 성장의 기억들, 그리고 자기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여러 질문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뜰을 잃어버리고서야 온 땅이 삶의 터전임을 알게 되었다는 역설적 고백이 있다. 또 너무 거대한 것만을 선망하다 눈앞의 사물을 보지 못하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 있다.

도시의 소음과 빠른 속도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이 책은 조금 낯선 경험일 수 있다.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샘물을 나누어 긷듯 책에서 눈을 떼고 이따금씩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의 수레바퀴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탱자나무 가시에서 ‘나 자신의 길’을 찾듯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관심과 질문을 던져 보자. 논술의 출발점도 귀착점도 결국은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현실임을 깨닫는 데서 우리의 문제의식은 생겨난다. 그럴 때 작가가 남긴 나머지 반 통의 물을 채울 가능성도 열린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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