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018년 동계올림픽을 백두산에 유치하기로 하고 백두산의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 등록까지 추진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중국에 항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오히려 2004년 발족된 고구려재단을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시키는 등 ‘축소 지향적 대응’에 급급해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내세우는 자주(自主)가 중국에만 예외인 셈이다.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聖山)’으로 떠받드는 북한도 침묵하고 있다. ‘주체(主體)외교’도 중국에는 예외인 모양이다.
동북공정 파문이 커졌던 2004년 정부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임효재 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증언은 더 충격적이다. 어제 그는 “우리 정부가 중국과의 갈등을 우려해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대책회의에서 한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을 자극 말고 대세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무조건 북을 돕는 ‘북의 후견인’도, 우리와 손잡고 일본을 견제해 줄 ‘남의 동조자’도 아니다. ‘중화(中華) 민족주의’ 깃발 아래 동북아의 패권(覇權)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힘을 기름)’라는 말 속에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강대국일 뿐이다. 그 패권주의가 역사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수민족 포용정책도 달라지고 있다. 백두산에서 한글 안내판을 없앤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한반도의 장래에 관한 안보협상까지 하고 있고 북한 정권의 붕괴에 대비해 국경지대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는 ‘자주’의 잣대를 들이대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중국에는 할 말조차 못하는 것이 ‘자주’와 ‘주체’를 내건 남북한 정권의 외교 코드다.
노무현 정부가 주변 강대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과 멀어지면서 얻은 성과가 고작 중국으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이라면 슬픈 일이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냉엄한 현실 인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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