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법안’]노르웨이 “영업에 의한 점유율 증가 못막아”

  • 입력 2004년 10월 27일 18시 31분


자유주의적 전통을 가진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나올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깃든 유럽에서도 신문시장 점유율 규제는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처럼 포괄적으로 시장점유율을 규제하는 입법례는 아무데도 없다.

유럽의 점유율 상한선도 나라에 따라 다르나 점유율 제한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신문기업의 인수 또는 합병을 통해 점유율을 늘릴 때’만 제한한다는 것이다. 부수 확장을 통해 점유율을 키운 경우까지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노르웨이는 아예 법조문에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따른 시장점유율 신장은 제한기준을 초과해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론규제를 헌법으로 금지한 미국

미국엔 신문에 관한 일반법이 없다. 있다면 ‘의회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가 있을 뿐이다. 반면 라디오방송은 라디오법, TV방송은 커뮤니케이션법,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의 규제를 받는다.

문재완(文在完·법학) 단국대 교수는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에 바탕을 둔 미국에선 정부가 신문시장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시장점유율 제한기준이 있다. ‘한 회사가 소유한 방송국에 가입한 TV시청 가구수가 미국 전체의 TV시청 가구수의 39%를 넘을 수 없다’는 것. 지금 한국 상황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독과점이 심화된 영국과 일본도…

2003년 기준으로 발행부수가 5287만부에 이르는 일본 신문시장은 전형적인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전국지 4031만부 중 요미우리(1408만부) 아사히(1223만부) 니혼게이자이(464만부) 등 3개지가 76.8%를 차지한다. 요미우리와 아사히의 점유율은 각각 30%가 넘는다. 그래도 점유율을 규제하지 않는다. 경품 제공 등 과열경쟁만 규제할 뿐이다.

영국 또한 2003년 기준으로 전국지 1252만부 중 선(346만부) 데일리 메일(236만부) 데일리 미러(194만부) 등 3개지가 62% 정도를 차지한다. 복수의 신문을 내는 상위 3개 신문그룹의 시장점유율은 70.6%이며, 5대 신문그룹의 시장점유율은 92.1%에 이른다. 그러나 점유율 규제는 신문과 방송 등의 교차 소유를 금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된다.

●프랑스, ‘반에르상법’ 대 ‘친에르상법’

1984년 프랑스 좌파정부는 ‘한 기업이 소유한 신문의 총발행부수가 전체 신문 발행부수의 20%(전국지), 15%(지방 일간지)를 넘도록 다른 신문을 인수합병할 수 없다’는 요지의 ‘1984-10-23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종이 탐식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신문기업을 인수해 물의를 빚은 에르상 그룹을 겨냥한 법이었다.

이 법은 즉각 기업의 영업활동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2년 뒤 이 법을 대체하기 위한 ‘1986-11-27법’이 만들어졌다. 우파정부가 제정한 1986년 법은 인수합병에 의한 시장점유율 상한선을 20%에서 30%로 완화했다.

●1년 만에 해산된 독일 ‘귄터 위원회’

제2차 세계대전 후 언론기업의 집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독일에서는 1967년 소유·집중의 심화가 신문기업의 생존과 언론자유에 미칠 영향을 조사한다는 목적으로 한 위원회가 발족했다. 당시 연방독점감독청장인 에버하르트 귄터를 위원장으로 한 ‘귄터 위원회’였다. 이 위원회는 1년 만에 해산했다. 인수합병에 의한 시장점유율 제한 등을 둘러싸고 위원회에 참여한 언론계 인사들끼리 갈등이 컸기 때문이다.

이후 1976년 개정된 연방독점법에 추가된 ‘언론관련 특수합병규정’에서 신문사의 기업합병이나 인수로 시장점유율이 20%를 넘으면 연방독점방지청에 신고하도록 했다. 점유율 산정 기준은 판매부수다.

●호주, 2대 신문그룹이 90% 시장 점유

세계에서 인구 1000명당 신문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노르웨이도 3대 신문그룹의 시장점유율이 63.5%에 이른다. 호주는 2대 신문그룹의 시장점유율이 90%나 된다. 오스트리아는 1위 신문그룹의 시장점유율만 57%다.

그중 노르웨이는 1997년 ‘신문 방송사의 인수 감독에 관한 법’을 제정해 인수합병에 의한 시장점유율을 제한했다. ‘전국 신문 발행부수의 20% 이상을 인수에 의해 소유하거나 취득할 때 인수를 금지하거나 획득지분을 박탈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실제 정부 개입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인수제한 기준점유율은 33%(세계신문협회 보고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항 있어도 인위적 제한은 꺼려

프랑스와 독일에서 실제로 인수합병에 의해 점유율 상한선을 넘은 경우가 있지만 규제하지 못했다. 정부가 강제로 시장구조를 조정할 수도, 소유권을 빼앗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소크프레스 언론그룹의 시장점유율이 32%까지 올라간 적이 있으나 정부의 제재 움직임은 없었다.

독일 최대부수의 ‘옐로 페이퍼’인 빌트와 디벨트 등을 발간하는 악셀 슈프링어 그룹은 최근 조사에서 가판시장의 80%, 전체시장의 23%가량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합병으로 시장점유율이 20%를 넘어 규제대상이 되지만 역시 정부가 개입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제균기자 phark@donga.com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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