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석호/독자의 선택을 막자는 건가

  • 입력 2004년 8월 27일 19시 07분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나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얘기하지 않아도 언론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득하는 이론이 신문과 방송의 차별적 규제론이다. 즉 신문이 주관적인 표현 자유를 스스로 구가하는 매체인 데 반해 방송은 권력이나 정파, 특정 사회그룹으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객관적 제도장치가 마련돼야 하는 특수 매체이기 때문에 더 심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선진국선 신문보다 방송 더 규제▼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을 빌려 자유로운 비판적 의견 표명을 보장해야 할 신문을 오히려 더 규제하고, 공정성 등의 문제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방송은 ‘개혁적’이라는 이유로 등한시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여론의 독과점’이 바람직한 언론시장 형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신문사의 ‘소유 제한’ ‘시장점유율 제한’을 해야겠다는 여당의 의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비판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나온 ‘검토안’을 보면 여전히 상식과 법 논리를 파괴하는 내용들이 살아 있음을 본다.

과거와 달리 신문은 방송 등을 포함한 전체 언론시장에서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특히 메이저 신문들의 영향력이 많이 낮아졌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인터넷 언론매체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더욱이 외국과 달리 우리는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에 신문기업의 힘을 두려워해서 공정거래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은 경제적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신문시장은 최근 수년 동안 흑자를 기록한 신문사가 손꼽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경제 논리에 따라 퇴출되는 신문사는 없고, 경영합리화 노력을 기울이는 신문사도 희소하다. 경제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신문시장의 운영구조다. 거기에 공정거래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모순이다. 신문시장을 경제논리가 적용되는 시장으로 바꾸는 게 먼저다. 그게 아니면 신문시장의 특수성을 인정할 일이다.

전국 일간지 120여개 가운데 경영 자료가 드러나는 것은 30개 정도이고, ABC협회를 통해 발행부수가 공개된 것은 이른바 ‘개혁 대상’이라는 메이저신문 3사뿐이다. 발행부수 공개를 꺼리는 신문사들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신문사의 경영 자료를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것이며 어떻게 시장점유율을 통해 객관적 규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의견의 다양한 출구를 보장하고 시장에서 이들끼리 서로 경쟁토록 하자는 것이 언론개혁안의 철학이라고 좋게 이해하더라도 사주의 지분을 제한하고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 사주의 영향력 때문에 편집권이 침해되고 정론을 펼치기 어렵다면 그런 신문은 시장에서 외면받기 마련이다. 편집권의 독립은 이미 헌법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독과점 기준치 신문시장만 낮춰▼

공정거래법은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이 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고, 공정거래위원회로 하여금 지위가 남용돼 경쟁이 저해되었는지를 판단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문시장에 대해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60% 이상이 되면 독과점 폐단이 발생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제재를 가하겠다고 한다. 비율의 형평도 문제지만 점유율 자체가 아니라 그 지위를 부당한 방법으로 달성하거나 유지했을 때 제재토록 한 공정거래법 취지에 배치된다.

독자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시장점유율이 높게 나타난 신문에 대해서도 정부가 구독을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니, 이는 여권이 말하는 언론개혁이 결국은 여권이 원하는 여론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과 염려들에 대해 합리적 논의 과정을 거쳐 ‘언론개혁안’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방석호 홍익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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