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최승노]경영공개 대상은 신문 아닌 방송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25분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열린우리당도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케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최근 발의한 정기간행물법(신문법) 개정안은 유감스럽게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신문의 고유 기능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신문과 정부가 상호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은 늘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 과거 군부 쿠데타 세력이 가장 먼저 접수했던 곳이 언론사였음을 생각해 보면, 언론장악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신문을 통제하기 위한 ‘합법적’ 장치가 있었다. 그 한 예가 1980년 12월 공포된 언론기본법의 제12조 2항 ‘신문 발행인 및 방송국 장은 매년 말 당해 언론기업의 재산상황을 공고하고 그 내용을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반민주 악법으로 지적돼 1987년 11월 언론기본법 폐지와 함께 사라졌으나 이번 열린우리당의 신문법 제15조에 그 내용이 더욱 구체화돼 부활했다. 발행부수, 판매부수, 구독료, 광고료, 재무제표 등 핵심 경영자료를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신고하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신문고시를 통해 이미 확인했듯이, 이 자료들은 신문을 규제하고, 신문사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정부가 신문사의 경영자료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신문의 비판기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신문법 제15조는 신문을 정부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개악 조항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정부가 기업에 핵심 경영정보인 원가를 공개하라고 하는가. 원가공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경쟁 없이 자원을 배분할 때 유용한 개념이다. 시장경제는 가격을 통한 경쟁이 핵심이다. 신문시장도 일반시장과 다를 게 없다. 신문은 공공성은 있지만 공공재는 아니다. 시장에서 선택되는 하나의 ‘상품’이다. 일반기업에도 요구하지 않는 원가공개를 신문사에 요구하고, 더구나 정부에 보고토록 하는 것은 통제주의적 발상이다.

신문시장의 투명성은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국가에서 신문부수공사기구(ABC)제도를 채택해 신문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정부가 정보공개를 요구하면 오히려 경쟁수단을 없애고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

정작 정부가 정보공개를 요구해야 할 대상은 민간 신문사가 아니라 ‘공영’ 방송사다. 신문시장이 소비자의 자발적 비용부담을 통해 시장점유율이 결정되는 반면, 방송시장은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정된 독과점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주요 방송사는 세금과 시청료로 운영되는 사실상의 ‘국영기업’이다. 국민에게 마땅히 사용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방송이 사실상 정부소유인 구조에서 방송은 정부에 비판적이기 어렵다. 신문시장이 방송에 비해 다양한 태도와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것은 국민의 의사와 선택을 반영한 결과다. 그리고 국민의 선택은 결코 우매하지 않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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