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컨티넨탈호텔의 심재혁 사장. 언제나 ‘뭔가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발견하고 주위에 소개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주말이나 휴가, 여행 중에도 호기심이 발동해 이것저것 색다른 시도를 한다. 최근 그가 특별히 관심을 쏟는 것은 와인이다.
얼마 전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 ‘마르코 폴로’에서 가진 사적인 모임에서 그는 다소 파격적인 모양의 와인글라스를 소개했다. 유리로 된 일반 물 잔과 같은 모양이되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잔이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 웨이터가 와인을 들고 오더니 물 잔으로 추정되는 그 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은 “아니, 이거 와인글라스였어?”라며 웅성거렸다. 술렁임이 가라앉자 그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소개한다.
“이건 오스트리아 리델에서 나온 최신형 와인글라스예요. 와인 잔의 손잡이인 스템을 없애 ‘스템리스 와인글라스’라고 불러요. 지난 호주 출장 때 눈여 겨봐 두었던 것이지요. 손잡이 부분을 없앤 와인글라스를 만든다는 발상이 재미있지요?”
별스럽게 생긴 와인글라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이어지며 어느새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무르익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대화를 유인한다. 그냥 앉아서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지는 자리에 신선한 얘깃거리와 경험이 될 만한 소재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체로 능숙하게 이야기와 분위기를 리드한다. 이날도 그 덕분에 색다른 방식으로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스템리스 와인글라스는 단순한 얘깃거리로 준비한 게 아니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평소에 와인 마시는 것을 어렵거나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전통적인 스타일대로 와인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한껏 세련미를 자랑하며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와인 마시기를 부담스럽거나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식당에 스템리스 와인글라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건 이런 이유였다.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편안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휴가나 출장을 다녀올 때면 전에는 없었던 원서가 한 꾸러미씩 늘어난다. 종류도 와인뿐만이 아니다. 역사, 음악, 그림, 사케, 차…. 출장과 휴가를 어떤 식으로 떠나든 그때마다 좀 더 알고 싶었던 분야의 원서를 직접 골라 사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 덕분에 그가 함께하는 자리는 해박한 지식과 재미난 이야기들로 넘쳐 난다.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그를 찾아갔을 때는 장미꽃이 화려하게 새겨진 겐조의 찻잔에 중국차인 보이차를 내놓았다. 일부러 인사동까지 가서 차 우리는 법을 배워 왔다고 한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역사연구가 시오노 나나미는 바로 이 점이 르네상스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왜’라는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이 다원적으로 펼쳐지면서 르네상스가 왔고 또 수많은 만능인이 배출됐다.
심 사장 역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를 즐긴다. 많은 분야에 걸쳐 그가 던지는 ‘왜’라고 하는 왕성한 호기심은 새로움을 찾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호텔의 서비스 구석구석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였다.
이런 모습은 르네상스를 만들어 내었던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자기 안에 있는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고, 이들을 연결해 모두가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발상의 전환. 내가 그를 ‘르네상스적인 경영인’으로 부르는 이유다.
홍종희 lizhong@nate.com
○ 홍종희는
△경희대 일어일문학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 국제금융연구과정 수료
△니시-니폰은행 서울사무소 마케팅 기획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연구원
△명사를 위한 멘터링 업체인 웰빙소사이어티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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