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댓클래식]‘巨匠들의 경쟁’

지금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 로비에서는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주제는 1922∼45년, 1952∼54년 이 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의 생애. 전시회는 그가 남긴 편지와 각종 공문서 및 신문기사, 사진 등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한 시대를 매혹시킨 거장의 자취를 조명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물 중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붙든 것은 ‘거장들의 경쟁’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었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지휘계의 거장 중에서도 특히 푸르트벵글러는 이탈리아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와 가장 강력한 경쟁관계를 이루었으며, 음악적으로도 첨예하게 대비됐다.

게시물 속에는 푸르트벵글러가 1930년 토스카니니를 평한 말이 큰 글자로 프린트돼 있었다. “토스카니니는 (오케스트라의) 탁월한 조련사다. 그러나 만약 그에게 심오한 예술혼과 상상력이 있었다면, 그와 같은 조련사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상대방을 약간 추켜 세워주는 듯하다가 사정없이 깔아뭉개는 이 말에는 ‘지휘자’라는 직업이 탄생한 이후 그 역할을 정의하기 위한 오랜 논쟁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는 악보에 쓰인 작곡가의 의도를 그대로 청중에게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지휘계의 ‘객관주의’를 대표했다면, 푸르트벵글러는 ‘지휘자에 의한 작품의 재해석은 연주의 필수적 요소’라고 여긴 ‘주관주의’ 지휘자의 대표자였다.

전시를 돌아보다 문득 ‘카라얀 시대라면 이런 기획이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의 사후 후임자가 된 카라얀을 처음부터 ‘벌레처럼’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카라얀의 감정도 고왔을 리 없다. 카라얀에 대한 푸르트벵글러의 혐오에는 초기 카라얀이 ‘토스카니니의 아류’처럼 알려졌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실제로 청년시절 카라얀의 연주에는 토스카니니를 연상시키는 절도와 빠른 템포가 엿보인다. 그러나 훗날 카라얀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정립시키고 오케스트라에 이를 ‘강요’한 ‘위대한 주관주의자’의 반열에 들게 됐다.

베를린 필의 현 음악감독인 사이먼 래틀 경은 “나는 젊어서는 푸르트벵글러에 기울었고, 나이가 들어서야 토스카니니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역시 음악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문제인 듯하다.

베를린=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