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그대 듣는가 봄의 선율을

  • 입력 2005년 4월 19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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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봄비에 벚꽃 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라일락이며 철쭉이며 온갖 꽃들이 뜰과 거리를 환하게 장식할 것이다. 꽃의 계절이 온 것이다.

4월 생(1846년 4월 9일)인 이탈리아 작곡가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는 가곡 ‘4월’에서 자기가 태어난 달을 이렇게 예찬했다. ‘그대는 못 느끼는가, 봄의 대기 속으로 퍼져 나가는 향기를…’. 피아노의 분산화음에 둥실둥실 실리는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실제 공기 속에 퍼져 나가는 꽃향기를 맡는 듯하다.

꽃의 계절에 더 자주 손이 가는 음반을 꼽자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다.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갠 날’에서, 미국 해군 핑커튼의 일본 현지처인 나비부인은 맑은 날 항구에 군함이 들어오고, 떠나간 남편이 웃는 얼굴로 돌아오리라고 노래한다. 실제로 군함이 들어온 날, 나비부인과 하녀는 집 근처에 피어난 온갖 꽃들을 따서 마당에 뿌린다. 미국인 부인과 함께 아이를 데리러 온 핑커튼은 흩뿌려져 있는 꽃잎을 보며 때늦은 후회에 빠진다.

왜 꽃의 계절에 서글픈 이야기를 떠올렸을까. ‘나비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상의 무의미함에서 벗어난, 극도로 긴장된 시간들의 이야기다. 1막에서 주인공은 결혼이라는 긴장된 행복을 겪고, 2막에서는 남편의 귀환이 임박했음을 알아채고는 긴장 속에 환희하고 절망하다가 죽는다. 이 긴장된 시간을 푸치니는 꽃내음 같은 감미로운 관현악으로 엮어 낸다. 이 작품 속에서 대기는 향기로 충만하고, 감미로운 선율과 기다림으로 채워져, 마침내는 긴장과 감미로움이 구분할 수 없이 섞여 버린다.

‘나비부인’을 작곡하는 동안 푸치니는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쳤다. 그를 간호하기 위해 인근 마을의 처녀 도리아 만프레디가 가정부로 고용됐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1909년 푸치니와 도리아가 불륜에 빠졌다며 두 사람을 비난했고, 도리아는 약물을 마시고 자살해 버렸다. 부검 결과 도리아는 처녀로 밝혀졌다. 주위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던 푸치니 부부는 영국 왕실의 성악 교사로 재직하다가 갓 귀국한 밀라노의 토스티 집으로 피신했고, 이들은 꽃 피는 4월이 되어서야 마음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푸치니는 훗날 가엾은 도리아의 모습을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하녀 류 역으로 형상화했다. 4월이면 푸치니와 토스티의 음악이 생각나는 데는 이 특이한 일화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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