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사랑은 한여름 밤의 꿈?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이른 아침 햇살에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 종일 피로하다. 하지(夏至)가 바로 어제(21일)였으니 태양의 위세도 이제 정점을 지나 차차 힘을 잃어갈 것이다.

1년 중 가장 짧은 하지의 밤은 유럽에서는 정령들이 마력을 발휘하는 밤으로 여겨졌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공연할 때 연주하기 위해 작곡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도 이날 밤이 무대다.

이 작품 속에는 누구나 잘 아는 선율이 들어 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손을 맞잡고 걸어 나올 때 연주되는 ‘축혼 행진곡’이다. 이에 앞서 신부가 아버지의 팔을 잡고 식장에 입장할 때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 연주된다. 두 작곡가의 활동연대에서 한 세기 반이나 지나, 먼 동아시아에서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 작곡가와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두 곡이 과연 결혼식에 적절한 곡일까? ‘한여름 밤의 꿈’은 연인들이 숲 속에서 요정들이 꾸민 전략에 따라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작품의 제목에 있다. 짧은 여름밤 동안 펼쳐진 사랑과 결혼의 드라마가 결국은 ‘꿈’이었던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에게 성실할 것을 맹세하는 결혼식장에서 이를 축하하는 선율은 ‘한바탕 요정에 홀린 꿈속의 결혼’을 상징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이다. 3막 서두에 ‘결혼 행진곡’과 함께 남녀 주인공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그런데 3막 끝에서 신랑 신부는 어떻게 될까? 놀라지 마시라. 신랑은 멀리 가버리고 신부는 죽어버린다. 신부가 금기를 깨고 신랑의 신원을 물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치고는 이런 ‘엽기’가 따로 없다.

따져보면 멘델스존과 바그너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썩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멘델스존은 유대인이었고 바그너는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힌 반(反)유대주의자였다.

경쾌하고 섬세한 음악을 작곡했던 멘델스존과 육중하고 비장한 음악을 썼던 바그너가 서로의 음악을 좋아했을 것 같지도 않다. 멘델스존은 바그너보다 4년 연상이지만 바그너가 중기 대표작인 ‘로엔그린’을 썼을 때 멘델스존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다.

의도야 어쨌건 두 사람의 선율은 결혼식장에서 두 가지를 상기시키는 듯하다. 바그너는, 부부가 서로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아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 멘델스존은, 사랑이란 어차피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만 명심해도 결혼은 성공이라는 것일까.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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