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차츰 개선되어 가던 것이 자민당이 복귀한 1996년부터 다시 개악되기 시작해 올 4월이면 문부성 검정을 마칠 7개의 교과서 내용은 크게 우려되는 수준으로 후퇴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지식인 사이에서 우익사관을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가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교과서를 새롭게 만들어 검정을 신청해 놓고 있다. 이 교과서는 ‘침략’ 대신에 ‘진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시아에 피해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천황을 강력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 내 비판적인 시민단체와 아시아 피해국들이 이러한 과정을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4일, 산케이신문은 ‘만드는 회’가 제작한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본 외무성의 문서를 공개하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무슨 일인가. 일본정부와 자민당이 교과서 개악을 위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1998년 6월 문부대신은 국회에서 현재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부정적 요소가 너무 많으니 집필 전의 단계에서 보다 균형 잡힌 내용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99년 1월에는 문부성 간부가 교과서 회사에 구체적인 주문을 한 바 있다. 수많은 자민당 의원들이 소위 ‘밝은’ 역사를 만드는 운동을 스스로 벌이고 있고, ‘만드는 회’에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수년에 걸쳐 이루어져 온 주지의 사실에 대하여 이제야 외무성이 언급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더욱이 1997년에 설립된 ‘만드는 회’를 준비단계에서부터 키워준 장본인이며 교과서 개악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벌여온 산케이신문이 또다시 논의의 장을 만든 것은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한 부서에서 망언을 하고, 다른 부서에서 그것을 비판하면서, 정부의 의중을 나타내고 문제는 무마하는 식의 일본의 행태를 자주 보아온 우리에게, 이런 외무성의 지적이 곧 이루어질 개악된 교과서의 출판을 준비하는 짜여진 수순으로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밖으로는 일본 정부의 성의를 보이고, 안으로는 우파를 자극하여, 이미 거의 확정된 교과서의 출판이 가져올 충격의 흡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외무성의 지적이 진실한 것이라면, 일본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여 교과서 수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아무런 실질적 조치도 없이 말뿐으로 끝난다면 이것 역시 망언의 연극이 될 뿐이다.
일본은 더욱 국제적 신뢰를 잃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아시아 피해국과 더욱 큰 외교적 마찰을 빚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피해국의 정부와 국민은 새삼 다시 피해와 모욕을 가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준엄하게 비판해야만 한다.
정진성(서울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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