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 수정 흉내만…종군위안부 전혀 안다뤄

  • 입력 2001년 3월 5일 18시 38분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한 중학교용 역사교과서의 내용 일부가 수정된 것으로 4일 밝혀졌다. 한일합방 난징(南京)학살사건 등 주로 근현대사에 관한 사항 중 일본의 잘못을 정당화했던 대목이 일부 고쳐진 것. 그러나 역사 왜곡 대목을 삭제하거나 대폭 수정하지는 않은 채 일부 표현만 완화하거나 보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진한 수정〓‘한일합방’대목에서는 ‘합법적이었다’는 표현 대신 ‘무력으로 합병을 단행했으며 심한 저항과 독립운동이 끈질기게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한일합방이 동아시아 지역 안정에 기여했다는 왜곡된 시각은 여전하다.

또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서술에서는 ‘패전 후 일본의 전쟁이나 아시아점령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일부 내용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대동아전쟁’이란 용어는 그대로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그동안 식민지배를 받아온 아시아 각국이 해방됐다’는 왜곡된 주장은 여전히 들어 있다. 한반도 지리를 설명하며 ‘일본을 향한 흉기로 변할 수 있는 위치’란 표현은 삭제됐다.

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은 한국 중국 등의 강력한 비판을 받은 대목의 일부는 고치되 기본적인 역사인식은 고수하려는 전략을 편 것으로 보인다.

이 교과서는 일부 내용을 고쳤다고 하지만 다른 교과서와 비교할 때 일본의 가해행위에 관해 훨씬 적게 기술하고 있다. 가령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은 한 줄도 없다. 결국 과거 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의 뜻이 담기지 않은 교과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내용 유출 배경〓일본에서는 교과서 수정 내용이 유출돼 보도된 경위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최초 검정신청본이나 1차수정된 내용은 집필자, 출판사, 문부과학성 일부관계자 외에는 전혀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관련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산케이신문은 ‘일본 언론보도→한국 중국의 압력 유발→일본 정부의 개입유도’ 식으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누군가 일부러 교과서 내용에 관한 정보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외부 반응 탐색용이나 통과시 관련 국가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김빼기 작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언론매체는 5일 문제의 교과서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제는 검정 합격에 문제 없을 것’이란 식으로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도쿄신문은 “중국과 한국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현 검정제도에서는 무리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필자이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전기통신대교수는 “중국 한국이 일본 총리도 볼 수 없는, 검정 전 교과서 내용에 대해 이러저러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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