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눈]리처드 핼로란/日역사왜곡 논리적 대응을

  • 입력 2001년 7월 25일 18시 43분


동아시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물론이지만 한국과 중국도 어느 정도는 비난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 및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일본에서 자기네 학생들이 배울 새로운 몇 권의 역사교과서를 만들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새 교과서가 일본이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기간에 자행했던 폭정을 인정하지 않고, 또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의 여성들을 일본군을 위해 동원한 이른바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역사교과서들이 1937∼1945년 중 중국에 대한 침략행위를 미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중국 국민의 분노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본은 교과서 중 몇 군데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역사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앞세워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정당하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논쟁과 관련해 한국인들의 주장은 논리적인 신뢰성이 떨어진다. 한국인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 일본에 대해 맹목적인 적개심을 키워왔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의 역사교과서나 박물관, 고궁, 사찰, 기념비 등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며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종종 일본을 ‘타도 대상’으로 표현한다.

또 한편으로 한국인들은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하며 음악이나 예술작품을 표절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혹시 일본과의 역사교과서 왜곡 논쟁에 있어서 일본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양보조치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국 역시 다른 나라의 역사교과서를 비난할 만한 자격이 없지 않으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사마천 이후 중국의 역사가들은 중국 황제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써왔다.

중국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공산당을 미화하기 위한 영웅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하다. 가장 최근의 경우가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국 전투기와 충돌한 중국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이다. 낙하산으로 탈출한 뒤 사망한 그는 애국적인 군인이자 가정에 충실한 가장,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등 완벽한 중국의 영웅으로 미화됐다.

또 중국 관리들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비난할 때마다 ‘내정간섭’이라며 다른 나라에 대한 분노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의 교과서 왜곡 논쟁에서는 일본에 대해 역사시간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중국인들은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기보다 일본을 압박함으로써 정치적 외교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번 논쟁에서 일본은 자국의 근대 역사를 면밀하게 검토하려는 의지는 물론 관심조차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사려 깊은 일본인들이 인정하는 바대로 일본은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행한 침략과 만행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를 주저해 왔다.

일부 일본인들은 아시아에 대한 침략행위가 서구 제국주의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일는지 모르지만 서구 제국주의를 대동아공영의 폭력적인 지배로 대체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구세대 일본인들은 한국을 점령한 것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한국을 구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조국의 어두웠던 과거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다.

1861∼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을 연구해온 미국인들은 이번 논쟁이 남북전쟁에 대한 미국인들간의 서로 다른 관점과 흡사하다고 이해하고 있다. 북부의 역사가들은 남북전쟁을 ‘내전(the Civil War)’이라고 부르지만 남부의 역사가들은 ‘국가간 전쟁(the War Between the States)’이라고 말한다.

일본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의 역사와 주장에 대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물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리처드 핼로란(자유기고가·아시아 안보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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