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희]애국주의를 넘어서서

  • 입력 2005년 4월 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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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의 열정을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생각해 보자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대립과 갈등을 요즘처럼 중계방송하듯 전해야 하는 언론행위가 그렇다. 게다가 대립의 한쪽 당사자인 일본이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언설에 전혀 귀 기울일 것 같아 보이지도 않으니 입맛이 더욱 쓰다.

‘독도’와 ‘교과서’, 그리고 ‘야스쿠니신사’로 요약되는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역사전쟁이라고 부름직하다.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수백 년의 역사적 배경이 있는 이 대립은, 경주에 비유하자면, 아직 반환점조차 돌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5일로 예정된 ‘일본 중학교 역사 및 공민 교과서의 검정 결과’ 발표는 이 열전(熱戰)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이다. 문제의 검정교과서에 대한 각 학교의 채택 여부가 최종 판가름 나는 8월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비난과 분노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내야 할 것인가. 해결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래서 생각의 방향을 바꿔 이렇게 한번 따져본다. 이 현안들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불가피하게 지속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 무엇인지를.

교과서 문제는 최소한 네댓 달 더 제 바퀴로 굴러갈 것이다. 독도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일본이 함포와 전투기를 앞세워 독도로 달려들지 않는 이상 ‘실효적 지배’ 상황 자체가 바뀔 일은 없다. 상대방이 뭐라고 떠들든 우리가 손바닥을 마주 쳐 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야스쿠니신사 문제는? 그건 조금 복잡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그가 집권하고 있는 한 ‘국내적 필요’에 따라 주변국들 눈치를 보지 않고 시시때때로 그곳을 참배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야당이 대통령에게 ‘총리 교체’를 요구하듯 우리가 그의 경질을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확연히 구분된다.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철저히 하되 그렇지 않은 일에서는 냉정히 한발 물러서서 다른 대안을 찾을 일이다. 21세기 애국주의의 동아시아적 특수 형태라 할 만한 ‘격정적 민족주의’로 매사를 도배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이번 주간엔 대한해협의 파고가 더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그런 와중에 때마침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6, 7일 열리는 아시아협력대화(ACD) 각료급회의에서 한일 외교장관이 회담을 갖는다. 지난해 11월 ‘한일 우정의 해’ ‘한일 FTA’ ‘한중일 프로축구리그 창설’ 등 갖가지 우호증진방안을 나누고 헤어진 지 다섯 달 만에 전혀 다른 상황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동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멀쩡한 얼굴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긴 쉽지 않겠지만 두 외교장관도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냉정히 구분하는 토대 위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싸울 일이 있으면 당연히 싸워야겠지만 실속 없이 맹목적 애국심만 부추기는 일은 서로 피해 갈 수 있도록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외교장관에게 주어진 본연의 책무가 아닌가.

김창희 국제부장 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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