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유럽의 도시 가운데 이곳만큼 사랑스러운 곳도 드물다. 알프스 산맥의 여운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산악, 그 사이를 수많은 호수가 수놓은 전원풍의 자연. 호엔부르크라는 막강한 산성 아래로 흐르는 잘자흐 강변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이 중세도시에선 지금도 모차르트 시대의 바로크 풍미가 그대로 느껴진다. 순박함이 눈으로까지 느껴지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한가로운 일상과 더불어.
그저 몽상적으로만 보이는 이곳 주민들. 그러나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찾아오는 이 역시 마찬가지다. 모차르트를 찾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기억을 더듬어 도시의 골목을 헤맨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어딜 가도 영화 속 장면 하나쯤은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반드시 눈에 띈다. 견습수녀 마리아가 아이들과의 첫 외출 때 노래 부르며 뛰어다니던 메리벨 정원과 잘자흐 강가, 폰트랩 대령과 면담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씩씩하게 걸어가던 광장의 분수, ‘아이 엠 식스틴, 고잉 온 세븐틴’을 부르던 큰딸 리자가 한밤중에 춤을 춘 가제보(정원의 팔각형 공간), 아름다운 호반의 폰트랩 대령 저택 등등….
모차르트는 바로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 레오폴트는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뮌헨 근방의 바이에른 주) 사람이다. 그는 잘츠부르크로 옮겨와 근방의 호반마을 생길갱 출신인 안나 마리아 페르틀과 결혼해 7남매를 두었다. 모차르트는 레오폴트 부부가 낳자마자 잃은 첫아들 이후 여섯 딸을 내리 낳은 뒤에 마지막으로 귀하게 얻은 막내아들이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은 잘츠부르크는 올해 더욱 관광객으로 북적댔다. 물론 가장 붐비는 곳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다. 그 골목 중간의 노란색 외벽 건물(게트라이데가세 9)의 3층 생가는 마치 성지순례 코스처럼 ‘머스트 시(must-see) 코스’다. 요즘은 다재다능한 미국작가 로버트 윌슨이 모차르트의 물건(첫 바이올린, 비올라, 클라비코드 등)을 배경으로 작품을 설치하고 이 둘의 교감을 통해 모차르트 탄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획전이 한창이다.
나는 잘츠부르크의 낮보다 밤을 더 사랑한다. 해가 지면 소음까지 일순 사라져 무거운 침묵에 잠기는 이 중세도시가 나를 모차르트가 태어났던 250년 전의 옛 잘츠부르크로 데려다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대성당 앞 광장의 모차르트 동상 앞에 서서 그와 무언의 대화를 시도한다. 천재의 영감을 얻기에 동상의 청동은 너무도 차갑지만 다행히 그가 남긴 음악은 내 피와 세포 속에 녹아들어 체온처럼 따뜻해져 교감을 이루기에 어려움이 없다. 그와 나는 그저 음악을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화의 상대가 된다.
잘츠부르크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제안을 하곤 한다. 잘츠부르크에 들르거든 그의 천재성을 잉태시킨 생 길갱을 반드시 찾아보라는 조언이다. 생 길갱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그만 호반마을로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모차르트는 알다시피 성(姓)이다. 그의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다. 이 이름에서도 특히 ‘볼프강’에 주목한다. 볼프강.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들이 태어나면 붙여주겠노라고 미리 정해 두었던 그 이름. 그런데 그 이름과 똑같은 섬이 생 길갱 마을에서 배로 30분쯤 들어가면 만나는 호수에 있다.
볼프강은 10세기의 성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 악마에게 수도원을 겸한 성당을 짓게 했던 일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성당이 완성되자 악마를 늑대로 변신시켜 그를 죄로부터 정화시켰다고 전해온다.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안나 마리아는 임신 중에 이 섬을 찾아가 그 성당에서 아들의 순산을 빌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당시 그녀에게도 기적이 필요했으므로.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거기서 그의 ‘악마적 천재성’이 잉태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길갱 마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단 한 번의 방문인데 그 풍경을 세세히 묘사할 수 있을 만큼 내 기억 속에 또렷할 정도로.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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