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겨울 남해군 한려수도 스케치
똑같은 바다라도 바다마다 표정과 분위기가 다르다. 동해가 격투기 선수처럼 터프하다면 서해는 찻집 여주인처럼 서두름 없이 느긋하고 편안하다.
그렇다면 남쪽 바다는. 바삐도 드나드는 굴곡 심한 해안선과 올망졸망 모인 크고 작은 섬. 쪽빛 바다는 여인의 속옷 레이스처럼 화려하고 우아하다. 거기서도 남해의 백미는 섬이다. 산을 통째로 바다에 빠뜨린 듯 곤두박질치는 가파른 산비탈과 갈매기의 비행처럼 유려한 해안선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광 덕이다.
그런 남해 바다의 매력. 가천 다랑이 마을이 제격이다. 훤칠한 설흘산 정상, 까마득한 잉크 빛 수면. 그 산중턱의 비탈에 깃든 마을의 옆모습은 그 위아래 양단이 이리도 극적이다. 멀리서 보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비바람에 쓸려 내리지는 않을지, 발 잘못 디뎌 미끄러지지는 않을지.
남해 풍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죽방렴이다. 그야말로 원시어업이다. 대나무 촘촘히 엮어 바닷물이 드나드는 물목에 ‘V’자 모양으로 꽂은 뒤 썰물 때 이리로 들어와 갇힌 물고기를 떠내는 고정그물. 지족마을에서는 아직도 이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는다. 콘크리트 기둥으로 보강한 것 말고는 변함없다. 며칠 전 가보니 갈치, 갑오징어, 새우 등이 갇혀 있었다.
죽방렴의 대표적인 어종은 멸치다. ‘죽방멸치’는 그물로 잡은 멸치와 달리 모양이 수려해 비싼 값을 받는다. 은빛 비늘이 그물에 손상되지 않은 덕분. 죽방렴은 ‘지족 손도’(손도는 ‘좁은 물길’)라는 창선과 남해 두 섬 사이의 물길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두 섬을 잇는 창선교 위가 전망 포인트. 고기가 든 죽방렴의 가두리를 볼 수 있게 다리를 놓은 전망대도 있다.
남해섬이 ‘연륙도’가 된 지도 오래. 그런데도 주민들은 육지가 아니란다. 섬은 규모도 크다. 제주 거제 진도 다음으로 네 번째다. 지도를 보면 남해 섬은 털을 잘 다듬어 놓은 푸들 강아지 형상이다. 몸통은 남해, 꼬리가 창선도다. 남해군에는 섬도 많다. 남해 창선 두 섬 외에 유인도 3개, 무인도가 66개. 섬이 섬을 감싸는 풍경. 남해 풍광의 진수다.
바다 풍경은 지방도 1024호선을 따르며 감상한다. 사천에서 창선·삼천포대교 건너 창선도에 들어와 오른 편 강진만을 끼고 서쪽으로 달린다. 창선교 지나 남해섬에 들어와 지족마을 거쳐 계속 서행해 시문 무림을 지나면 국도 19호선과 만난다.
섬을 일주하는 해안도로도 있다. 길이가 무려 302km나 된다. 초입은 남해대교 아래 유람선 선착장. 남해 충렬사(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가묘를 모신 사당)를 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충무공이 예서 전사하셨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7년 전쟁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해전이 바로 이 노량(남해대교 아래)에서 펼쳐졌고 충무공은 바로 이 전투에서 순국했다. 노량은 하동과 남해 섬 사이의 좁은 물길. 장군과 조명(조선+명나라) 연합 수군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지상군 퇴로를 열기 위해 노량으로 집결 중인 왜선 500여 척을 밤새워 공격해 200여 척을 부수고 승기를 잡는다. 그 와중에 장군은 적을 쫓다가 전사하고 이 전투를 끝으로 전쟁도 막을 내렸다.
전투가 시작된 곳은 노량. 그러나 충무공이 숨진 격전장은 조금 떨어진 관음포다. ‘관음포 이 충무공 전몰유허’는 장군의 유해가 육지에 운구된 곳. 이곳 첨망대에 오르면 전장이었던 관음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 ‘전쟁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한자글귀 ‘戰方急愼勿言我死(전방급신물언아사)’는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남해대교에서 4km.
바다를 숲과 더불어 즐기는 운치 있는 곳도 있다. 물건리(삼동면)의 방조어부림이다. 거센 바람과 해일 같이 높은 파도로부터 주민과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해변에 조성한 숲. 반달형 해변을 감싼 숲은 1.5km나 이어지는데 1만여 그루의 나무가 그 안에 빼곡하다. 숲 속 오솔길을 걷노라면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들린다. 낙엽 진 요즘은 더욱 멋지다.
남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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