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에서 기지개를 켠 뒤 천왕봉에서 몸을 일으켜 대륙을 향해 맹렬히 차고 오르다가 마침내 천지(백두산)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백두대간의 기상을 이어받았다.
그렇다면 육당(최남선)이 꼽았다는 ‘조선 십경’을 한 번쯤은 내 발 아래 둠이 옳지 않을지.
그중 ‘장기 일출’은 영일만의 호미곶 해돋이를 이른다.
호미곶을 중심으로 그 남쪽의 ‘과메기 익는 마을’ 구룡포, 북쪽의 ‘영덕대게 고향’ 강구항으로 별미 해맞이 여행을 떠난다.》
과메기의 감칠맛-영덕대게의 그윽한 향 ‘겨울 별미’는 덤
○ 장기갑에서 호미곶으로
사연은 이렇다. 영일만에 둘러싸인 천연항 포항. 19세기 말 대륙 침탈을 노리던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 조선 침략에 박차를 가한다. 이때 일본수산실업전문대의 실습선 한 척이 장기갑에서 좌초해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난다. 1901년의 일.
일본은 사고 책임을 대한제국에 덮어씌운다. 해안관리시설 미비가 이유. 저항할 힘이 없던 대한제국은 요구대로 등대를 지어 준다. 반도 침략의 뱃길을 우리 스스로 안내한 셈. 그때의 ‘장기갑 등대’가 현재의 ‘호미곶 등대’(호미곶 해맞이광장)다. 벽돌을 팔각형 구조로 쌓아 6층 높이(26.4m)로 올린 하얀 등탑은 1세기 전 유물(1903년)이건만 자태는 지금도 기막히다. 그 옆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그로부터 90년 후. 한국에 새 기운이 태동한다. 일제가 만들고 한 세기 내내 지리교과서에 실린 ‘산맥체계’ 대신 ‘백두대간’으로 한반도 지형을 가늠하자는 민족사관적 인문지리 개념의 등장이다. 산맥 체계는 일본 학자가 지하 광물질을 토대로 분류한 것으로 한반도 수탈의 시각이 농후했다. 반면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로 분석한 여암 신경준(1712∼1781·조선 후기 실학자)의 지리서 ‘산경표’는 산과 물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를 오롯이 껴안는 인문적 지리관을 담고 있다.
그 기운에 힘입어 장기갑이라는 일제 지명을 ‘호미곶’이라는 본래 지명으로 되돌리자는 논의가 제기됐다. 호미곶은 격암 남사고(1509∼1571·조선 명종 때 풍수학자)가 쓴 ‘산수비경’에 등장하는 지명.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며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으로 그린 이가 바로 남사고다. 그 그림에서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이고 호미곶은 꼬리다. 남사고는 이 두 곳을 천하명당으로 지목했다고 전해 온다.
영덕군이 스스로를 ‘한반도의 아침을 깨우는 고장’이라고 부르고,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해돋이 행사를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곳 해맞이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뜻 깊다. 그 덕분일까. 매년 새해 해돋이 인파가 30만 명(내년은 37만 명 예상)을 헤아린다. 2004년부터는 떡국도 대접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광장 한쪽에 2만 명분(약 4t)을 끓일 수 있는 국내 최대 가마솥(지름 3.3m 깊이 1.3m 둘레 10.3m)도 설치했다. 과메기 1만2000마리로 장식한 홍보탑의 과메기도 시식할 수 있다. 물론 무료다.
○ 과메기 익는 마을 구룡포
구룡포항(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은 호미곶 남쪽 12km로 포항공항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 천혜의 항구에는 어선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주종은 오징어와 대게, 꽁치. 그런데 최근 이곳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오징어잡이가 시들해진 대신 꽁치를 반건조시키는 ‘과메기 농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수온 변화, 조업 경쟁 심화로 인한 어획량 감소가 배경이다.
호미곶 광장을 등지고 구룡포항을 향한 20분간의 해안도로 드라이브. 그 길은 내내 왼쪽으로 바다를 벗하는 풍치 만점의 비경도로다. 그런데 차창 밖을 떠나지 않는 것이 하얀 갈매기만은 아니다. 과메기덕장 역시 마찬가지다. 11월 찬바람과 더불어 시작되는 이 땅의 과메기 시즌. 불과 몇 년 새에 온 나라를 삼킨 겨울의 맛 진객 과메기는 최근 일본에서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로 인기다. 그 인기는 매출액이 말해 준다. 지난해 포항시는 과메기로만 4300억 원의 매출(순수익 600억 원)을 올렸다. 구룡포에서 과메기를 생산 중인 김상훈(해동상사 대표) 씨는 “등줄기가 파랗게 빛나고 안살은 장밋빛이 돌 만큼 붉은 것이 상품”이라며 “김과 배춧잎, 물미역을 차례로 겹친 위에 초고추장 찍은 과메기를 얹고 다시 된장 찍은 마늘 파 고추를 놓아 쌈으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 영덕대게의 고향 강구항
찐 대게의 그윽한 향. 그것은 아직 인공으로 만들지 못한 몇 남지 않은 자연 향 가운데 하나다. 대게의 진미는 바로 이 향이다. 대나무 닮은 긴 다리를 잘라내 속을 헤집어 꺼낸 하얀 속살. 입에 넣기도 전 코끝에 걸린 그 향이 미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대게의 진미는 게딱지 밑 내장에 숨겨진 푸른 게장. 이 게장만 따로 걷어내 밥과 함께 볶는 게장밥, 게딱지에 술을 부어 마시는 게딱지 술은 영덕대게 반상에 반드시 뒤따르는 선미(仙味)다.
대게도 여러 종류다. 가장 맛난 것은 박달대게로 강구항의 대게식당에서 상차림과 함께 내는 큰 놈(1.1kg)이 12만 원 선이다. 혼자 먹으면 남고 둘이 먹으면 조금 부족할 듯. 대게는 1, 2월이 제철이다.
구룡포,영덕=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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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 축전 △새해 해돋이 시각=7시 32분 △시간=31일 오후 5시 30분(루미나리에 점등)∼1월 1일 오전 8시(1만 명분 떡국 만들기 체험) △장소=호미곶 등대와 등대박물관, 연오랑 세오녀 동상, 상생의 손(조각품)이 있는 호미곶 해맞이광장 △찾아가기=포항시내∼국도 31호선∼구룡포∼지방도 925호선∼13km(총 37km). 포항에서는 시내버스 200, 200-1번으로 구룡포로 간 뒤 ‘대보’행 버스로 갈아탐. △이벤트 ①해 바뀜=새해맞이 카운트다운, 빛과 불꽃 판타지쇼, 해피뉴이어 축하공연 ②해맞이=소망기원 촛불잔치, 합화식(호미곶 채화 불, 포스코 용광로 불, 새마을운동 발상지 불), 2007년 ‘경북 방문의 해’ 선포식, 새해 해오름 음악회, 1만 명분 떡국 만들기 체험 ③드라이브 인 시어터=해맞이광장에서 해돋이까지 기다리는 시간(오전 1시∼2시 30분)을 활용해 차 안에서 감상할 수 있는 주차장 영화관 ▽웹정보=sunrise.ipohang.org(호미곶 해맞이광장 실시간 웹캠 설치)
◇영덕 ▽삼사해상공원 △새해 해돋이 시각=7시 34분 △시간=31일 오후 7시 20분∼1일 오전 9시 30분 △위치=강구항 뒤편 언덕에 조성한 공원(8만 평) △찾아가기=영덕읍∼국도 7호선(7km), 영덕읍∼공원 시내버스 운행 △이벤트 ‘빛으로 펼치는 새해의 꿈’ ①송년의 밤&자정축원=경북대종 타종식, 불꽃놀이, 월월이청청(부녀자들이 집단으로 펼치는 강강술래 형태의 민속놀이), 달집태우기, 지신밟기, 새해맞이 엽서보내기 ②시식=과메기 양미리 꽁치를 따끈한 차와 함께 내며 떡국도 대접한다 ③경북대종 타종 체험=1일 오전 8시 30분부터 한 시간 ▽영덕 창포해맞이공원 △위치=강구∼축산 해안도로 변. 산불로 민둥산이 된 해안기슭에 조성한 자연친화적 공원으로 국내 최대규모 풍력발전기 단지와 함께 있다. △찾아가기=강구항∼지방도 918호선(20분) ▽어촌민속전시관=대게잡이 등 영덕과 동해안의 고기잡이에 관한 다양한 정보. 054-730-6790 ▽웹정보=tour.yd.go.kr
조선 십경 조선 십경 설명 천지 신광(神光) 백두산 천지 풍광 북한 압록 기적(汽笛) 경적 울리는 압록강의 기선 대동 춘흥(春興) 대동강변 봄빛 재령 관가(觀稼) 황해도 구월산 동선령 풍경 금강 추색(秋色) 금강산의 단풍 비경 경포 월화(月華) 경포대 수면에 비치는 달 남한 장기 일출(日出) 장기에서 뜨는 아침 해 변산 낙조(落照) 변산 앞바다의 해넘이 연평 어화(漁火) 연평도 조기잡이 어선 불빛 제주 망해(茫海) 제주도의 망망대해 해맞이 명소의 새해 해돋이 시각 해맞이 명소의 새해 해돋이 시각 장소 시각 독도 7시 26분 간절곶(울산) 7시 31분 감포(경주) 7시 32분 호미곶(포항) 7시 32분 영덕 7시 34분 망양정(울진) 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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