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시작된 것이 생태관광(이콜로지 투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완벽한 조화를 체험함으로써 어머니 지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이다. 캐나다는 그 현장의 하나. 눈으로 뒤덮인 캐나다의 자연에서 펼쳐지는 생태관광의 현장을 찾아본다.》
북미대륙 서쪽을 남북으로 질주하는 로키 산맥. 북미의 ‘백두대간’이다. 캘거리에서 밴쿠버로 가는 에어캐나다 비행기는 그 로키와 로키 서쪽으로 이웃한 셀커크 산맥을 가로지른다. 3만2000피트 상공의 비행기 안. 눈 덮여 새하얀 ‘산의 바다’, 그 산의 계곡을 덮은 ‘구름의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저 설산에서, 그 운해의 위아래에서 스키를 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그것도 7일씩이나.
CMH(Canadian Mountain Holiday·세계 최대 규모의 헬리스키 회사)의 무대. 그곳은 이렇듯 광대하고 험준한 로키와 셀커크 산맥의 대자연이다. 헬리스키란 헬리콥터를 이용해 설산을 스키로 누빔을 말한다. 거기에는 여러 즐거움이 있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깊은 눈 속을 헤치는 터프함, 나무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스릴감,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고운 설면을 처음으로 지치는 설렘….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감춰진 채 전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속살을 두루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헬리스키와 보통 스키의 차이. 그것은 자연과 인공의 차이만큼이나 현격하다. 보통의 스키는 인공의 즐거움. 반면 헬리스키는 자연이 주는 천연의 즐거움이다.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고리다. 그렇게 자연에 취하면 약도 없다. 눈사태로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위험도 감수할 만큼 자연 속에서 즐기는 헬리스키의 매력은 기막히다.
나의 첫 번째 헬리스키는 악몽 그 자체였다. 10년 전 뉴질랜드 남섬의 서던알프스 산맥. 한나절 6런(run· 산정으로 스키어를 올려다 주는 헬기의 운행횟수 단위)을 계획한 첫 헬리스키는 반나절 3런으로 그쳤다. 즐거움은 고사하고 완전 녹초가 되어 포기해야 했으니. 스키를 신고도 무릎까지 빠지는 딥스노에서 스키를 타려면 고도의 훈련과 강인한 체력이 필요함을 그날 비로소 알게 됐다.
헬기로 해발 3000m 이동
그로부터 7년 후.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캐나다 로키 산맥 서쪽의 셀커크 산맥(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켈로나). 용감하게 나섰지만 걱정이 앞섰다. CMH의 헬리스키는 7일이나 계속되는 데다 숙소마저 오지여서 싫건 좋건 헬기와 스키, 자연을 벗삼아 일주일은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이송되지 않는 한.
금요일 저녁. 캘거리공항의 델타캘거리호텔에는 일요일부터 시작될 CMH의 헬리스키 예약고객이 모두 모였다. 이들은 이튿날 아침 로키 산맥과 주변에 산재한 8개의 로지로 떠난다. 버스로 혹은 헬기로. CMH의 8개 로지에서 헬기로 이동해 스키를 타는 산악의 면적이 스위스 국토만큼 넓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가 묵은 곳은 ‘고딕스’라는 로지. 셀커크 산맥의 산악인데 캘거리공항에서 버스로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515km). 오전 7시 15분. 종소리에 잠이 깼다. 이어지는 30분간의 스트레칭. 부상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아침식사 후 43명은 11명씩 네 그룹으로 나뉘어 가이드를 따라 헬기에 올랐다. 처음 오른 해발 2200m의 산중턱. 구름이 짙게 드리운 흐린 날인데도 셀커크 산맥이 펼친 아름다운 산악풍경은 고혹적이었다. 발아래는 무릎까지 빠지는 깊은 눈, 계곡 아래로는 운해. 그 사이를 아무 흔적도 없이 고이 간직된 하얀 설원이 메웠다.
전인미답의 북미설원 내달려
드디어 다운힐. 23도쯤의 가파른 경사였지만 속도가 붙지 않는다. 정강이에 부딪히는 설면저항 때문이다. 스키팁(앞부분)을 살짝 들어주면 스피드도 나고 회전도 쉽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눈 속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탓. 그러다 보니 몸이 자꾸 뒤로 젖혀지고(후경 자세), 그 때문에 허벅지에 부하가 실려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결국 오후에 크램핑(근육마비로 쥐가 나는 것)으로 눈밭에 드러누웠다. 겨우 근육마비를 풀고 가까스로 다운힐 했지만 크램핑은 다시 왔다. 모두가 걱정스럽게 다가와 조언했다. 물과 바나나를 먹으라고.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온 래디올로지스트(방사능기기 의료기사) 필 씨와 마크 씨의 그 조언은 효과 만점이었다.
헬리스키의 매력. 일단 체험하고 나면 그 유혹을 거부할 수 없음을 이번 여행을 통해 체험했다.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CMH의 헬리스키 고객 가운데 75%가 반복해서 찾는 단골이라는 통계인데 실제로 내가 속한 그룹에서 나 같은 초짜는 단 두 명뿐. 모두 매년 한 차례씩 여러 로지를 순례하며 4, 5차례 이상 헬리스키를 즐긴 고수들이다. 그중 ‘스킵’이라고 불린 70대 미국인은 특별했다. 로지에는 매일 저녁 그날 다운힐한 코스 이름과 그 코스의 수직 고도차를 더한 합계(당일 및 개인 통산)가 게시되는데 스킵의 개인 통산 마일리지는 최종일 현재 130만 m가 넘었다. 나의 통산 마일리지는 7일간 3만400m.
헬리스키 일정은 매일 똑같다. 그래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매번 매일 다운힐하는 코스가 다르기 때문. 하루 8∼14런(날씨에 따라 좌우됨)을 했지만 매번 다른 풍경에서 다른 느낌으로 탔다. 덕분에 초짜의 딥스노 적응력도 매일매일 커졌다. 어느 정도 적응된 수요일 오후부터는 하늘도 맑게 개어 햇빛 쏟아지는 설원을 누비는 특별한 기쁨도 누렸다.
드디어 마지막 날인 토요일. 오후에 로지를 떠나기에 앞서 오전 스키런이 시작됐다. 일주일간의 고된 훈련. 그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다섯 차례의 다운힐 내내 멋진 S자 커브를 설면에 그렸다. 그것은 내가 꿈꾸던 바로 그 모습의 아름다운 회전호. 로지를 떠날 때 첫날 당도할 당시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대신 깊은 아쉬움과 함께 환희에 가득 찬 자신감이 나를 감쌌다. 지금도 눈감으면 생각난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려놓은 그 멋진 슈푸르(눈 위에 스키를 지친 자국)가.
켈로나(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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