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에 오르는 길은 비까지 흩뿌리며 쌀쌀했지만 독자들은 준비된 우의를 껴입으며 김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중했다.
“인조가 항복하러 나간 남한산성의 서문은 이렇게 입구가 작아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영어 표기도 남문은 south gate인데 서문은 west door더군요.”
느리면서도 낮은 톤의 김 씨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뒤편의 사람들은 “죽 한 그릇도 못 드신 분처럼 목소리가 작습니다. 더 크게 해 주세요”라는 협박성(?) 간청을 하기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남한산성의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 견학. 수어사 이시백이 청군의 동태를 살피며 방어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김 씨는 “이곳에선 멀리 송파나루의 삼전도까지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자욱한 구름에 가려 ‘치욕’의 상징인 삼전도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날 답사엔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고생하는 남편에게 김훈 씨의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는 아내, 남한산성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 등 다양한 동기의 독자들이 참가했다. 12대 조상이 남한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이영구(74·서울 강남구 역삼동) 씨는 “‘남한산성’을 읽기 전에는 그분이 그런 고통과 치욕을 당했다는 것이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종친들과 매년 찾아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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