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등식에 동의한다면 오늘부터 연재될 ‘일본의 속살, 온천 료칸(旅館) 시리즈’를 놓치지 마시길. 료칸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재미’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스파(spa)보다 훨씬 오래됐고월등한 온천 료칸의 섬세하고 미려하며 우아한 접대와 휴식의 문화. 이런 동양적인 ‘호스피탤리티(Hospitality·歡待)’가 스파로는 휴식의 극치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 구미를 당기는 것은 당연한 일. 일본 전통 료칸 여행이 여행객들의 인기를 끄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본보는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JNTO) 한국사무소와 료칸 전문 이오스여행사(www.ios.co.kr)의 협조와 조언을 토대로 일본 최고급 온천 료칸 7곳을 엄선해 현지 지방자치단체(현청 시청) 및 관광 연맹 관계자와 함께 현장을 취재했다.
지역도 규슈(가고시마 현 2곳)와 혼슈(니가타 현 1곳, 가나가와 현 하코네 2곳), 홋카이도(오타루 시 2곳)로 일본 전국에 걸쳐 있으며 스타일 역시 다양하다.
네 곳은 전통식, 한 곳은 리조트식, 두 곳은 와모던(和modern·일본풍 모던양식)이다. 이들 료칸은 매주 한 곳씩 마이 위크엔드 지면에 소개된다.》
삼나무숲 노천탕에 그윽한 ‘生의 휴식’
250년 된 무사가옥 류곤 료칸… 스파보다 깊고 호텔보다 고풍스러워
도쿄 역을 출발한 신칸센 열차. 한 시간쯤 달렸을까. 다카사키 역 이후로는 내내 터널 안이다. 분명 산악을 지나는 것이리라. 조모고겐 역에서 다시 시작된 긴 터널. 신칸센으로도 13분을 달릴 만큼 길다. 그 암흑 공간을 탈출하기 직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종착역인 에치고 유자와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다.
이것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 펼쳐졌다’로 시작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첫 머리의 그 긴 터널이. 한겨울이라면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변했다’는 다음 글귀 역시 실감하리라. 니가타는 한겨울에 눈이 4m 이상 내리는 설국이니까. 그러니 잊지 마시라. 류곤(龍言) 온천 료칸을 여행할 때는 ‘설국’을 체험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에치고 유자와. 소설 ‘설국’의 무대이면서 동시에 야스나리가 원고를 쓰기 위해 묵었던 온천마을이다. 유독 료칸에 묵으며 글쓰기를 즐겼던 이 소설가. 그 료칸 ‘다카한(高半)’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킨다. 물론 세월만큼 변화가 커 모습은 호텔로 변했어도. 그래도 집필실만큼은 2층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료칸 류곤은 이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멀지 않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무이카마치 온천마을의 산자락 평지에 있다. 40년째 영업 중이라는데 외형만 보면 수백 년 됨 직해 보인다. “고풍스러움이야말로 류곤의 자랑이지요. 몇 채만 빼면 대부분 100년 이상 된 고옥들로 모두 근처에서 옮겨왔습니다.” 료칸 사무를 총괄하는 요스케 시노하라 씨의 설명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연못을 낀 삼나무 숲가의 정원을 고옥 여러 채가 둥그렇게 둘러싼 형국이다. 온천이라고 하나 근처는 한가로운 농촌 모습이다. 그래서 료칸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이 고을의 대가로 오해할 만큼 류곤의 건축은 품위 있고 고풍스럽다. 그중 백미는 250년 된 무사가옥. 근처 시오자와 마을의 만석군이자 사무라이였던 사람의 집으로 객실로 사용 중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고풍을 테마로 한 전통 료칸 류곤. 객실에는 그것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정갈한 다다미방에는 이로리(방 한가운데 천장걸이 주전자가 있는 숯불 놓기 공간)가 있고 문을 열면 연못과 숲, 정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벽에 걸린 서액의 글씨도 품위가 있다.
노텐부로는 삼나무 숲가에 있다. 수면에 반사된 진초록 숲과 파란 하늘 그리고 상큼한 공기. 자연의 정기가 온천수에 그대로 녹아들어 내 몸에 스며들 것 같다. 고요한 정적 가운데 오로지 들리는 것은 온천수가 흐르는 작은 소음뿐. 이마저 류곤에서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류곤의 진수는 아니다. 그것은 저녁식사의 상 위에 펼쳐진다. 그 빛나는 음식. 지난 40년 류곤의 부엌에서 할머니가 된 늙은 찬모와 비슷한 세월 동안 근처 이와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숯불로 구워 온 74세 노장의 손길로 빚은 니가타의 향토요리다.
여기에 사케(일본 청주)의 고향 니가타의 90여 개 양조장에서 빚은 미주의 향연까지 반상에 펼쳐지면 류곤의 저녁상은 황제의 정찬 못지않게 격상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진수 중의 진수는 마지막 순서인 쌀밥. 쌀의 고장 니가타에서 생산되는 일본 최고의 쌀 고시히카리, 그중에서도 긴자의 요정 주인이라면 누구나 최고로 치는 우오누마산 쌀, 그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손꼽히는 시오자와산 고시히카리로 지은 밥이다. 그러니 류곤에 묵음이란 바로 니가타의 진수를 섭렵함이다. 료칸 여행의 진수를 또 하나 체험하는 것과도 같다.
[여행정보]
◇류곤 료칸 ▽홈페이지=www.ryugon.co.jp ▽위치=니가타 현 미나미우오누마 시 ▽가격(1인·2인 1실 기준)=3만∼5만 엔(약 23만4000∼39만 원·세금 및 송영서비스 별도) ▽찾아가기 △항공편: 인천∼도쿄(하네다·나리타), 니가타공항 △열차편: 하네다·나리타공항-도쿄역∼신칸센(시간당 2, 3편 운행)∼에치고 유자와 역(갈아타기)∼무이카마치 역.
◇류곤 료칸 자유여행 이오스 여행사는 일본어를 못해도 갈 수 있는 자유여행 패키지를 판매한다. 항공권, 료칸 2박(아침 저녁식사 2회 및 점심 1회), 료칸여행 안내서(자체 제작), 여행자보험, 송영서비스(에치고 유자와 역∼료칸)가 포함됐다. 언어소통이 어려운 이를 위해 직원 한 명이 출발부터 도착까지 전담해 로밍폰으로 24시간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출발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길 찾기, 열차 갈아타기 등을 알려준다.
▽상품 △3일 일정: 111만 원부터. 귀빈실(정원 쪽)은 149만 원부터. △4일 일정: 3일 일정에 도쿄 1박(특급호텔·조식 포함)만 추가. 122만∼161만 원. 모든 고객에게 사케 한 병(5000엔 상당), 유료노천탕 이용권(하루 2000엔) 제공. 문의 홍은주 과장, 엄태훈 주임 02-546-4674
▼일본 전통 료칸의 품격 대물림 女주인이 좌우
일본의 료칸. 한자어는 같아도 우리네 여관과는 천지차이다.
료칸은 료칸이다. 그리고 문화다.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고품격의 일본 전통문화다. 료칸이 여관과 다른 것은 의식주가 모두 제공된다는 점이다. 유카타(얇은 홑겹 천으로 지은 욕의)와 식사(아침 저녁 두 끼) 그리고 객실. 잠만 자고 훌쩍 떠나는 한국의 여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료칸의 품위를 결정짓는 세 가지. 오카미(女將)와 음식, 노천탕이다. 오카미는 주인이자 총지배인이다. 음식부터 침구, 하물며 꽃꽂이까지 료칸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 그래서 료칸의 분위기와 품격은 오카미에 의해 좌우된다. 대를 물려 가족이 운영하는 일본의 료칸. 그래서 오카미는 며느리 아니면 딸이 맡는다. 료칸 음식은 특별하다. 제 고장의 제철, 제 음식을 내야 제대로다. 특히 저녁의 가이세키(會席·한국의 정식 상에 해당) 요리는 료칸 품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최고의 그릇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든 산해진미가 차례로 놓인다. 여기에 곁들이는 니혼슈(일본 청주) 한 잔. 온천 료칸에서 맛보는 휴식의 절정이 여기에 있음을 잊지 마시라.
온천 료칸만의 독특한 문화. 유카타는 그중 하나다. 료칸 안에서는 이 복장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시부(나가노 현) 같은 유서 깊은 온천마을에서는 골목길 산책도 OK. 휴식의 극대화를 편안한 복장으로 도모한 것은 오랜 역사에서 잉태된 지혜다.
온천욕으로 식욕을 돋우는 것 또한 체험에서 발전된 문화. 아페리티프(식전에 마시는 가벼운 술)로 식욕을 돋우는 서양인과 달리 일본인과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인은 온천욕과 사우나로 식욕을 돋운다.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온 손님. 그들을 맞는 것은 다다미 위에 깔린 정갈한 이부자리다. 차탁에는 군것질거리도 놓인다. 손님을 ‘모시기’ 위해 쉼 없이, 소리 소문도 없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나카이상(여종업원을 부르는 통칭)의 노고에 료칸에서 휴식은 감동으로 치닫는다. 이것이 료칸 휴식의 매력이자 마력이다.
니가타 현 미나미우오누마 시=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촬영 :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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