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가 30대 기업(매출액 기준)을 대상으로 여름 휴가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참혹했다. 매년 최장 2주까지 연속 휴가가 가능한 기업은 현대오일뱅크 뿐이며, 직원이 10년 근속하면 1~3개월의 안식월 휴가를 주는 기업은 SK텔레콤이 유일했다.
월요일부처 금요일까지 휴가를 낸 뒤 앞뒤 주말을 합쳐 9일 동안 쉬는 것이 30대 기업의 가장 일반적인 여름휴가 형태였다. 반면, 한국전력, 포스코, 교보생명, 한국가스공사, 신한은행 등 5개 기업은 “휴가를 내 주말까지 합해 5일 쉬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답했다. 주어진 휴가를 모두 합쳐 최소 2주 이상 한꺼번에 쓰게 하는 장기휴가제도는 대다수 국내 기업들에게 아직 낯선 문화였다.
회사 책상을 정리하고 한 달간 바캉스를 떠난다는 유럽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저 ‘머나먼 꿈’에 불과한 걸까. 이 꿈같은 이야기를 실현하는 국내 기업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4월 말 제일기획은 ‘아이디어 휴가’라고 불리는 장기휴가제도를 도입했다. 개인별로 테마를 정해 근무연수에 따라 짧게는 2주일에서 길게는 두 달간 휴가를 떠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초 여름휴가를 최대 16일까지 쓸 수 있도록 합의하며 기업들의 장기휴가제 도입 러시에 합류했다.
사실 이들 기업보다 먼저 장기휴가제를 도입, 성공적으로 운영한 모범 사례도 있다. 3년 근속할 때마다 안식휴가와 휴가비를 지원하는 다음, 5년마다 1개월 휴가를 주는 인터넷 쇼핑몰 옥션, 3년 이상 근무 직원에게 안식월 휴가를 주고 연봉 10% 안에서 교통비를 지원하는 국내 홍보대행사 인컴브로더, 직원들이 매년 2주 휴가를 의무적으로 쓰도록 장려하는 씨티은행 등이다.
그 뿐인가. 건설사업관리(CM) 회사인 한국파슨스는 직원으로 10년, 임원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에게 2개월 유급 안식휴가를 준다. 한국리더십센터는 7년간 근무한 직원에게 1년간의 안식년을 주고 휴가비로 1000만원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기휴가로 재도약에 성공한 회사와 직원들은 “한 달 휴가 도입은 기업과 개인이 모두 윈윈(win-win)하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기휴가를 통해 기업은 생산성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고, 개인은 자기계발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가 반납’이 예사인 여느 최고경영자(CEO)와 달리 지난해 두 달 휴가를 다녀 온 한미파슨스 김종훈(58) 사장은 “자리를 비운 사이 오히려 회사 성과가 개선됐다”고 털어놓는다. ‘휴테크(休+tech)’의 귀재인 공공문제 PR컨설턴트 박경희(28) 씨는 한달 휴가 동안 건강을 되찾고 못다한 취미활동도 즐겼다. 한 달간 갈고 닦은 업무 관련 지식도 한껏 발휘하는 중이다.
많은 여가전문가들은 “9일간의 휴가로는 충분한 재충전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석호 교수(레저경영연구원 원장)는 “주 5일 근무제는 장시간 효율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상해주는 장기간의 연속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생산성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도 장기휴가제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가 전문가인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는 “적어도 일상의 쳇바퀴에서 한 달은 벗어나야 21세기 경쟁력인 창의성도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590호 주간동아 커버스토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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